"나 돌고래 돌돌이는 내 집을 오염시킨 인간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소!"
머지않아 법정에서 동물이 보금자리 권리를 두고 인간과 싸우는 이런 광경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첫 ‘생태법인’ 시도가 제주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많지 않고, 개발업계의 반발도 예상되지만 법인화에 성공하면 동물권 보호의 획기적 이정표로 기록될 전망이다.
17일 제주도 등에 따르면, 도는 지난달 3차 워킹그룹(실무 협의체) 회의를 열어 생태법인 제도화를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검토했다. 워킹그룹 위원장을 맡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본보 인터뷰에서 "상당히 체계적 수준의 법 조문이 논의됐다"면서 "연내 법안 마련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생태법인은 생태적 가치가 큰 동·식물이나 자연환경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법인격을 지닌 사단·재단법인과 같다. 생태법인이 출범하면 생존을 위협하는 개발행위에 소송을 제기하고, 기후위기 등에 맞서 보호대책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법인 주체 스스로 권리 행사가 불가능한 만큼, 후견인이 관련 절차를 밟는다.
사실 인간과 동·식물의 법적 분쟁은 과거에도 있었다. 2003년 경남 양산 천성산에 서식하는 도롱뇽이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을 상대로 터널공사 착공금지가처분 신청을 했고, 2018년엔 문화재청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반대하는 산양들이 소송을 걸었다. 황금박쥐, 수달, 검은물떼새 등도 서식지 보호를 요구하며 원고로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결과는 동물들의 완패. "동물의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부 기각됐다. 해당 종(種) 중 정확히 어떤 개체가 피해를 받는지 특정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최 석좌교수는 "도롱뇽 소송 등의 법적 공백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가 생태법인"이라며 "뉴질랜드 황거누이강, 스페인 석호, 파나마 바다거북 등 해외에서도 최근 10년간 이따금 입법례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방큰돌고래가 1호 생태법인 주체로 지목된 건 개체수(110여 마리)가 적어서만은 아니다. 남방큰돌고래는 불법 포획 후 동물원에서 쇼를 하며 인간의 눈요깃감으로 지내다 환경단체의 노력으로 2013년 자연방사됐다. 이후 새끼와 함께 있는 모습이 확인되면서 세계 최초로 야생번식에 성공한 방류 돌고래 사례로 기록됐다. 생태계의 중요성을 대변하는 최적의 상징인 셈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중단' 운동에도 남방큰돌고래는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오염수 방류와 관련, 한국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남방큰돌고래를 포함한 고래 164마리를 청구인 명단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환경보호에 늘 따라다니는 개발 논리를 잠재워야 한다. 2012년 남방큰돌고래 방류 결정 때도 효과에 견줘 예산이 너무 많이 드는 것 아니냐는 지역사회의 우려가 비등했다. 하지만 제주도와 환경단체들은 10년 전 '제돌이'가 결국 바다의 품에 안겼듯, 이번에도 공감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최 석좌교수는 "생태법인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라며 "성사되면 국제사회에서 갖는 한국의 위상도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