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제재로 석유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가 급기야 재래식 유조선을 해빙이 가득한 북극해로 보냈다. 운항 거리가 짧은 북극 항로를 이용해 석유 판매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해빙 충돌에 대비되지 않은 재래식 유조선이 좌초될 경우 극심한 환경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15일(현지시간) 북극 전문 매체 하이노스뉴스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달 아프라막스급 유조선 ‘레오니드 로자’호와 ‘NS 브라보’호를 러시아 북서부 항구도시 무르만스크에서 북극해 방향으로 출항시켰다. 이 유조선은 약 100만 배럴의 석유를 싣고 중국 산둥성 일조항으로 향하고 있다.
북극 항로를 이용하면 항해 기간을 10일가량 줄일 수 있다. 통상 중국으로 향하는 러시아 유조선은 러시아 북서부 발트해 연안의 프리모르스크항에서 출발해 지중해와 수에즈 운하, 인도, 동남아를 지나 중국에 도착하며, 약 45일이 걸린다. 반면 무르만스크항에서 출발해 북극해와 베링해협, 캄차카반도, 동해를 지나면 약 35일 만에 중국에 도착할 수 있다. FT는 원유 항해 전문가를 인용해 연료비만 약 50만 달러(6억6,500만 원)가 절약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번 출항이 북극해 항로에 대비하지 않은 일반 유조선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러시아는 북극 항로를 이용해 10여 척의 강화 유조선을 중국으로 보냈다. 강화 유조선은 해빙의 압력을 선체가 버틸 수 있도록 보강하고, 얼음 탓에 석유가 유출될 경우 긴급 대처를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재래식 유조선엔 이런 기능이 없기 때문에 북극 항로에 사용된 적이 없다.
FT는 “기후변화로 얼음이 녹은 탓에 2020년부터 북극항로에서 재래식 선반을 사용할 가능성이 생겼지만, 전문가들은 유빙이 선박을 가두어 선체를 부서뜨리는 등 극심한 위험이 남아있다고 경고한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7월 강화 선박이 당초 예상됐던 것보다 더 극심한 날씨에 직면해 동(東) 시베리아해에 갇힌 채 쇄빙선이 구조하러 오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수송이 석유 판매에 대한 러시아의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으로의 석유 판매가 막힌 러시아는 최근 중국으로 판로를 돌렸지만, 수출 거리가 길어지며 시간과 비용이 늘어났다. 비용 부담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 되자 사상 초유의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캐나다 소재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 국제법 교수 마이클 바이어스는 "간절한 국가는 절박한 일을 한다"면서 "크렘린궁은 러시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국과 같이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하려는 곳에 석유를 공급하기 위해 필사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