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박스를 기계적으로 옮기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내가 박스의 일부가 되어 선별 적재장으로 빨려들어가는 컨베이어 벨트로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 든다. (…) 이 새벽, 여자친구도, 아빠, 엄마도, 몇 되지 않는 친구 녀석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경우의 수가 0에 가깝기에, 내 두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으로 멘토의 그 결론 나지 않는 미래 예측, 미래 대비에 관한 강의를 듣고 또 듣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주원규의 단편소설 '카스트 에이지'는 성공을 열망하나 녹록지 않은 현실에 허덕이는 스무 살 청년을 밀착 관찰합니다. 배달, 택배 상하차 일로 꽉 채운 하루를 반복하던 어느 날. 그는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에 자신이 던져진 기분을 느낍니다. 불안이란 연료를 태우며 쉼 없이 달려도 정작 방향을 모르는 삶.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건 고작 '스스로 잘하면 된다'는 (헛된) 믿음을 다잡아 보는 게 다입니다.
주 작가를 비롯한 11명의 작가가 '월급사실주의'라는 이름의 동인으로 모여 낸 첫 소설집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에는 그런 인물들이 모여 있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고립감을 느끼고 당장 생계를 위해 부조리에 눈 감아야 하나 갈등하는, 아주 평범한 이들의 '먹고사는' 문제들. 그 핍진한 이야기에 문득 서러워지기도 합니다.
노동은 가장 현재적 주제입니다. 빵을 만들다가도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되는 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니까요. 하나 일상에선 똑바로 보기에는 고통스럽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자꾸 외면당하죠. 이런 문제를 풀 대책은 모르나 적어도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고통에 대해서는 쓸 수 있다"는 장강명 작가의 말('기획의 말을 대신하여')이 확 와닿았습니다. 계속 쓰고 또 읽고, 그렇게 직시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