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말 한국에서 꿀벌 집단 실종 현상이 처음 발생한 후, 농촌진흥청(농진청)은 실종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2022년 1~2월 농림축산검역본부, 한국양봉협회와 함께 민관 합동 조사를 실시했다. 전국 99곳의 양봉 농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2년 3월 농진청은 "꿀벌응애류, 말벌류에 의한 폐사와 이상기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농진청이 발표한 원인 가운데 네오니코티노이드(네오닉) 계열 농약은 포함되지 않았다.
농진청은 2014년 ‘꿀벌 위해성 특별 재평가’를 근거로 네오닉계 농약의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농진청은 유럽연합이 네오닉계 농약의 사용을 제한(2013년)한 직후인 2014년 네오닉계 농약 사용 농가 주변 환경을 대상으로 ‘영향 평가’를 실시했다. 그리고 실험 결과 네오닉계 농약과 꿀벌 피해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유럽연합과 미국은 네오닉계 농약의 꿀벌 위해성을 인정하고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왜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취재팀은 농진청의 2014년 실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농진청에 ‘꿀벌 위해성 특별 재평가’에 대한 자료를 정보공개청구했다.
자료 및 취재팀의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당시 연구진은 경북 안동시에서 네오닉계 농약이 살포되는 사과 과수원과 고추밭 인근에 벌통을 배치했다. 과수원에서는 4월 21일~6월 10일, 고추밭에서는 7월 6일~8월 7일까지 꿀벌 상태를 관찰했다. 그러나 첸셩 루 중국 충칭(重慶) 시난(西南)대 독성학 교수는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2014년 농진청이 실시한 재평가에서 관찰 기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루 교수는 꿀벌의 겨울철 실종 현상과 네오닉계 농약의 만성적인 영향 사이의 상관성을 입증한 독성학 분야의 권위자다. 루 교수는 “장기간에 걸친 네오닉의 위해성을 고려해야 한다. 네오닉계 농약의 위해성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꿀벌 실종이 주로 나타나는 겨울과 초봄에 걸쳐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루 교수는 2012년 미국 하버드대 환경노출생리학 교수로 재직 당시, 꿀벌이 낮은 농도의 네오닉계 농약에 장기간 노출되면 그 영향이 겨울철 꿀벌 집단실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리고 실험 내용은 2014년 국제 과학연구지 ‘곤충학 회보’에 발표했다.
루 교수는 △치사량 미만의 네오닉계 농약(IMI, CLO)을 먹이에 넣은 꿀벌 실험군과 △일반 먹이를 먹인 대조군을 설정했다. 두 그룹에 7월 2일부터 13주 동안 먹이를 준 뒤, 10월 말부터 상태 변화를 관찰했다. 10월 말~12월 말까지 실험군과 대조군의 개체수는 비슷하게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꿀벌 군집은 기온이 낮아지면 개체수가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월동 기간인 1월 초부터 큰 차이가 발생했다. 네오닉계 농약을 섭취한 실험군 꿀벌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대조군 벌통에서는 유충이 성장해 개체수를 회복했다. 4월에 이르자 두 그룹의 개체수 차이는 3배 가까이 벌어졌다. 루 교수는 취재팀에게 “치사량 미만의 IMI와 CLO는 초겨울까지 꿀벌 군집에 영향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1월부터는 꿀벌이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국내 일부 양봉 전문가는 “여름 꿀벌의 수명은 한 달에 불과해, 여름에 살포된 농약의 영향이 겨울 꿀벌까지 전달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루 교수는 그러나 “시험에서 사용한 네오닉계 농약이 치사량 미만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치사량 미만의 네오닉계 농약은 꿀벌에 당장 피해를 주지 않는다. 여러 세대를 거친 뒤 겨울 꿀벌에 피해를 줄 수 있다. 네오닉계 농약의 만성적인 위해성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난다”고 반박했다.
한국은 농약이 꿀벌에 유해한지 평가하는 과정에서 만성적인 위해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농약을 등록하려면 농약관리법에 따라 ‘꿀벌 위해성 평가’를 거쳐야 한다. 평가 체계는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꿀벌 성충을 농약에 48시간, 96시간 같이 단기간 노출시켜 위해성을 보는 ‘급성 독성 평가’이고, 2단계는 농약을 잎에 살포한 후 꿀벌에 치명도가 유지되는 기간을 평가하는 ‘엽상 잔류 독성 평가’다. 3단계는 야외에 설치한 구조물에서 꿀벌을 농약에 노출시킨 후 비행 등 꿀벌의 상태 변화를 평가하는 ‘야외 시험’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꿀벌 위해성 평가 체계’도 한국처럼 3단계로 나뉘지만,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1단계에서 성충과 유충을 대상으로 급성ㆍ만성 독성을 함께 평가한다. 만성 독성 평가는 10일(성충) 또는 21일(유충) 동안 꿀벌을 치사량 미만의 농약에 노출시켜 경과를 관찰하는 방법이다. 또 미국과 유럽연합은 실제 자연 환경에서 꿀벌에 대한 농약 영향을 평가하는 시험인 ‘반야외 시험’과 ‘야외 시험’을 각각 2, 3단계에서 실시한다.
사실 국내 연구진도 이미 네오닉계 농약의 만성 위해성에 대한 경고를 제기했다. 국립농업과학원의 2021년 연구보고서 ‘농약의 위해성 평가를 위한 환경노출 평가방법 개선연구’를 보면, 연구진은 국내 농약을 미국과 유럽연합의 ‘꿀벌 위해성 평가 체계’에 적용한 결과, 티아메톡삼(THM)과 디노테퓨란(DTN) 두 종의 만성 독성이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네오닉계 농약의 만성독성은 국내 기준에 따르면 파악되지 않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의 기준에 따라 평가한 결과 위해성이 드러난 것이다.
국내에서 ‘꿀벌 위해성 평가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는 4년 전부터 시작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농진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은 지난 2019년 농약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꿀벌 평가 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1차 TF 회의는 2019년 10월에 열렸지만, 4개월 후에 열리기로 한 2차 회의는 약 3년이나 지난 2022년 12월에야 개최됐다. 3차와 4차 회의는 올해 3월과 6월에 각각 열렸다. 농촌진흥청 농자재산업과 소재성 사무관은 논의가 지연된 이유에 대해 “농약 업체들과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만성 독성 평가 등을 포함해 개선된 꿀벌 위해성 평가 체계를 가능한 한 빨리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윤미향 의원은 “국내 4대강과 지하수 전반에 네오닉계 농약이 잔류된 사실은 꿀벌이 네오닉계 농약의 만성적인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라며, "올해 국정감사를 통해 '꿀벌 위해성 평가 체계'의 개선안 마련을 촉구하고 만성 독성이 우려되는 농약의 관리 방안 등에 대해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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