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아닌 국민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잘 모른다. 출연연에 몸담은 연구자들은 발끈할지 모르겠으나, 국민이 체감할 만한 성과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누리호 발사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출연연 성과를 일반 국민들이 몇 가지나 꼽을 수 있을까.
연구성과는 단기간에 얻을 수 없고 적어도 수년, 십수 년 투자해야 비로소 결실을 본다고 출연연은 호소한다. 하지만 연구개발(R&D)에 꾸준히 투자해온 세월을 감안하면 이 해명이 설득력을 얻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자연재해나 감염병 대유행처럼 피해를 줄이는 데 공공기술이 절실히 필요할 때도 출연연의 존재감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오로지 출연연 탓일까. 정부가 바뀔 때마다 출연연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갈등, 블라인드 채용과 연구과제중심제도(PBS) 부작용, 기관 간 통폐합 검토, 기관장 선임을 둘러싼 잡음 등 연구를 방해한 요인 대다수는 정부의 영향이 컸다. 정부 요구에 맞춰 무리하게 일하다 건강을 해친 연구자도 있지만, 모두가 쉬쉬했다.
일부 기업 사이에서 정부 연구비는 ‘눈먼 돈’쯤으로 여겨진다. 자격 없는 기업이 컨설팅을 가장한 브로커 업체에 돈을 주고 산 연구계획서로 국가 연구비를 축내온 실태를 당정이 추적 중이다(관련 기사 ☞ 가구회사가 화장품 연구로 수억원 따내... R&D 카르텔 실체는 연구자가 아니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R&D에 적잖은 예산을 쏟아부었건만 여전히 미래 먹거리를 걱정하고 있는 우리 처지가 그간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서였는지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하지만 모조리 기업만의 잘못일까. 국가 연구비는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 돈으로 어느 연구, 연구자를 지원할지 결정을 정부가 하는 만큼, 준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 관리·감독할 책임도 정부에 있다. R&D 규모가 커지는 사이 브로커 업체는 파악조차 어려울 정도로 우후죽순 생겼는데, 연구비 쓰임새를 들여다봐야 할 연구관리전문기관은 이름값을 못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연구비를 허투루 쓴다는 등 연구실 ‘윗선’의 부정을 고발하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기득권 학계의 벽이 워낙 높아 무명 혹은 신진 연구자들이 국가 R&D에 참여할 기회를 얻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 특성상 끼리끼리 뭉치고 ‘라인’을 타면 비위나 불공정 문제는 묻힐 수 있다.
과학자들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만, 관료들은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연구현장에 엄격한 윤리 잣대를 적용하면서도 위축되지 않게, 한정된 연구비가 공정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배분되게 만들었어야 한다. 보수, 진보 정부 가릴 것 없이 이걸 제대로 못했기에 연구자 비리, 연구비 나눠먹기 같은 구시대적 관행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 놓고 정부는 “과학계 이권 카르텔”을 잡겠다며 당장 석 달 뒤 써야 할 R&D 예산을 일방적으로 도려냈다. 예산이 가장 많이 깎인 출연연은 우리가 카르텔이냐며 발칵 뒤집혔다. 대학 연구실에선 카르텔일 리 없는 학생, 연구원에 불똥이 튈 판이다.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반성은커녕 누가, 왜 카르텔인지 설명도 없이 예산만 ‘대패 삭감’해버린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비리와 구태가 있다 해서 집단 전체를 싸잡아 카르텔로 몰아세우는 방식은 폭력적이다. 카르텔과 무관한 절대다수 구성원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병폐만 들어내면 될 일이다. 건설 노조와 사교육 업계를 코너로 몰아간 방식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슬 퍼런 정권 앞에 연구자들은 분을 삭이며 속엣말을 하고 있다. 누가 누구더러 카르텔이라 하는가. 다음 카르텔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