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탈북민 강제북송'에 진심인 속내는?[문지방]

입력
2023.09.17 14:30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오는 23일에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막이 오릅니다. 원래 지난해 열려다 코로나19 여파로 연기된 행사입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Heart to Heart, @Future" 즉 '마음이 통하면 미래가 있다'는 슬로건 아래 아시아인이 하나 되는 축제입니다.

그러나 최근 불법 무기거래와 위성 등 군사기술 이전을 위한 북러 정상회담에 이어 북한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중국과의 정치·경제적 결속을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큽니다. 지난달 미국 대통령 전용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정상이 한반도 안보 협력 강화에 나서자 북한도 러시아·중국과 관계를 격상시켜 '사회주의 연대'를 가속화하려는 셈법인 것이죠.

북한은 2021년 도쿄올림픽에는 방역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불참했지만, 이번에는 호전된 방역 상황에 더해 중국과의 우애를 과시하듯 18개 종목에 191명의 선수단을 파견, 5년 만에 국제무대에 복귀할 예정입니다.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보다 참가 종목은 7개, 선수단 규모는 20여 명이 늘었습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얘기를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이 대회가 어쩌면 누군가에겐 지옥문이 열리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중국에 억류돼 있는 재중 탈북민들 얘기입니다.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재중 탈북민 규모는 약 5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에 따르면, 2019년 1월 북한이 국경을 폐쇄한 이후 탈북민 송환을 거부하면서 누적된 중국 구금 탈북민만 최대 2,000명에 이릅니다. 일각에서 중국 정부가 아시안게임을 치르고 정치적 부담이 없어지면 1,000명가량의 탈북민을 대거 강제 북송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기 전까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골든타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중국은 지금까지 탈북민 강제북송의 배경으로 정치적 이유를 댔습니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 해소'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죠. 중국은 탈북민을 '난민'이 아닌 '불법체류자'로 봅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탈북민 강제 북송의 이유가 비단 정치적 고려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릅쓰고 탈북민을 강제 북송하는 진짜 이유는 '돈' 때문이라는 것이죠.

지난 7일 통일부가 '재중 탈북민 북송 위기와 대응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요안나 호사냑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은 "중국에 의해 강제북송된 탈북민은 북한 내 구금시설에서 지속적으로 무임금 노동력을 공급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강제 송환된 탈북민을 노동교화형에 처하는데 이들은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강제 노역에 시달립니다. 북한에 입국했다가 반공화 적대범죄 행위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건강 악화를 이유로 735일 만에 풀려난 케네스 배는 지난 2017년 회고록을 통해 "하루 10시간씩 주 6일간 고된 노동이 이어졌다"고 털어놨습니다. 물론 별도의 임금은 없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증언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강제 노역에 동원된 강제 북송 탈북민들이 중국과 북한의 경제적 이득에 기여하는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이들은 북한 내 구금시설에 갇혀 무임금으로 탄광과 섬유공장 등에서 일합니다. 특히 최근 탈북자의 75%가 20~40대 여성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섬유공장에 동원되는 노동력이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가발과 인조속눈썹 등을 만드는데, 이들이 만든 제품은 '북한산'이 아니라 '중국산'으로 둔갑합니다.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조선인민군 등 구금시설을 운영하는 기관의 하부 무역회사를 통해 '중국산'으로 중국 업체로 납품되기 때문이죠. 북한은 경제 제재 때문에 수출이 쉽지 않지만 중국을 통해 외화를 벌고 있고, 중국 업체는 싼값에 납품받은 제품을 전 세계에 수출하며 폭리를 취하고 있는 셈입니다. 호사냑 부국장이 "강제 북송 탈북민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지린성 등 북중 국경지대에서 생산된 제품들은 북한의 노예 노동이 동원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도록 제재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을 저지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중국에 공식적인 송환 중단 요구를 해야 한다거나, 유엔 총회 등에서 이 문제를 강력하게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부도 노력을 안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정부 관계자는 "민감한 외교 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라면서도 "박진 외교부 장관이나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하고 중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이례적인 대응"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돈이든 북한의 체제 안정이든 북중이 탈북민 문제에 있어 한 배를 탔다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횡행하는 탈북민에 대한 인신매매 등 인권 유린을 막기 위해선 이번 대규모 강제북송을 막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비록 골든타임이 짧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원치 않는 귀향을 앞둔 1,000명 이상의 탈북민들에게도 아시안게임이 '화합의 축제'로 와닿을 수 있도록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 모두가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 보길 기대해 봅니다.



김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