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아무도 모르게 들여다본 계좌가 5년간 1.5배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영장 없이도 세무당국 자체 판단만으로 개인의 금융거래내역 등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만큼,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국세청의 납세자 계좌추적 현황’에 따르면, 국세청이 지난해 실시한 ‘일괄조회’ 건수는 3,953건으로 1년 전보다 19.8% 증가했다. 2017년 1,514건이던 일괄조회 건수는 2021년(3,301건) 처음으로 3,000건을 넘긴 데 이어 1년 만에 4,000건 돌파마저 목전에 뒀다.
국세청이 금융재산을 조회하는 방법은 개별조회와 일괄조회 두 가지다. ‘핀셋 조사’ 성격의 개별조회는 범죄 혐의 등 특수 상황에 놓인 납세자가 이용한 은행‧금융사의 특정 시기 거래내역만 조회하는 방법이다. 연평균 5,000~5,500건 정도가 이뤄진다.
이와 달리 일괄조회는 납세대상자가 이용하는 모든 은행과 금융사의 계좌‧주식‧보험 내역 등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국세청은 보통 신고기간이 지나도 상속세‧증여세를 물릴 수 있는 부과제척기간(10년)을 기준으로 금융거래내역 등을 살핀다.
문제는 조세행정 편의주의를 앞세운 일괄조회가 남용돼도 저지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은 개인의 금융재산을 보려면 법원의 허가(영장)를 받아야 하지만, 국세청은 자체 판단만으로 일괄‧개별조회를 할 수 있다. 국세청의 일괄조회 요청을 받은 금융기관은 이를 거부할 수 없고, 해당 개인에게 국세청이 계좌 내역을 들여다본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계좌추적이 끝난 뒤 금융기관이 ‘국세청에서 계좌 조회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개인에게 통보할 뿐이다.
국세청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일괄조회를 허용하고 있어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일괄조회는 상속세, 증여세 관련 조사를 위해 실시하는 사례가 많다”며 “지난해에는 부동산 자산 가치 등 상속 재산가액이 급등해 살펴본 경우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속‧증여세 추징액이 일괄조회 건수에 비례해 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세청이 내건 명분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괄조회 건수가 약 20% 증가한 지난해 상속세‧증여세 추징액은 오히려 줄었다. 증여세 추징액(5,983억 원)은 전년보다 약 40% 감소했다.
유 의원은 “국세청의 일괄조회는 최소한의 범위 제한조차 없어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큰 데도 남발되고 있다”며 “국세청의 '깜깜이 조사'를 막고 무분별한 계좌추적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괄조회 규정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