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러시아 정상회담을 앞두고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과 관련, "유엔의 대북 제재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것이다. 전쟁 무기 확보에 사활을 건 러시아의 '강공 모드'로 인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체제가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과 영국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안보리 사안에 대한 프로세스도 (북러 정상회담의) 논의 주제가 되고 있다"며 "필요한 경우 북한 친구들과 이 주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안보리와 관련, 북한과 공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북러 정상회담 일정과 장소에 대해선 "수일 내" "러시아 극동 지역"이라고만 설명했다. 별도 기자회견은 계획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접촉도 올해 안에 계획돼 있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무기 및 군사 기술 거래를 금지한 유엔 대북 제재 결의를 완화 또는 무력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특히 "(북한과 무기 거래를 하지 말라는) 미국의 경고엔 관심이 없다. 북한과 러시아 양국의 이익에 중점을 둘 뿐"이라고 강조했다. 안보리 대북 제재 이탈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이와 관련,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무기가 급한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각오하고, '불량국가' 북한에 접근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문은 "군사 대국을 자부하는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 지원을 요구하는 건 전대미문의 사건이 될 것"이라며 "그만큼 러시아가 급박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미 뉴욕타임스도 이번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두고 "김 위원장은 러시아군을 돕고, 러시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군수품을 공급할 능력을 가지고 푸틴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한국이 원한다면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관련한 세부 사항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과 계속 접촉할 것"이라며 "한국은 러시아의 교역 파트너이고 양국은 동북아와 한반도 안정화를 위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한 한국을 '비우호적 국가'로 지정하는 등 경계해 온 만큼 이 역시 이례적인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