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12일 김의철 사장의 해임 제청안을 의결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했다. 이사회 구도가 여권 우위로 바뀌자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정연주·고대영 전 사장이 정권교체 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해임됐던 과거 사례가 이번에도 반복된 것이다.
KBS 이사회는 김 사장 해임 사유로 △대규모 적자로 인한 경영 악화 △직원들의 퇴진 요구로 인한 리더십 상실 △불공정 편향 방송으로 인한 대국민 신뢰 추락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직무유기 및 무대책 △고용안정 관련 노사합의 시 사전에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은 점 등을 꼽았다.
법원 판례를 보면 해임 사유로 인정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보인다. 고대영 전 사장도 2018년 KBS 신뢰도와 영향력 추락, 파업 사태 초래 등 8가지 이유로 해임됐는데, 법원은 “임기만료 전 해임은 직무수행에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로 제한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해임 무효 판결했다.
정연주·고대영 전 사장은 대법원까지 가 해임 무효 판결을 받았지만 늦은 판결 때문에 KBS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김 사장 해임도 이런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1일 법원이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에 대한 해임처분 효력을 정지시킨 사례를 보면, 법적 싸움이 이전 사례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김 사장도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정부는 ‘공영방송 신뢰회복’ 등의 기치를 내걸고 경영진 교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방식은 혼란과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편향적인 보도를 바로잡겠다”는 선언을 ‘보도 통제’ 예고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많다. 정치 세력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장이 되어버린 공영방송의 경영구조를 바꾸도록 법을 개정하는 게 근본적인 ‘신뢰 회복’의 길이다.
물론 감사 결과를 토대로 전횡과 비위가 포착된 일부 기관장을 걸러낼 수는 있겠다. 그러나 단기간에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4명의 방송기관장들을 해임하고, KBS 사장 해임까지 추진하는 현실이 상식적이라고 보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