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부 지침에 두 달 새 글로벌 R&D 예산 3.5배... "돈도 기술도 흘러 나갈라"

입력
2023.09.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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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부, 각 부처에 업무협조문 보내
'폐기사업, 국제협력 적극 발굴' 지침
아무리 해외 연구교류 중요하다지만
"급조하면 퍼주기식 될 가능성 커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줄여 '글로벌(국제협력) R&D'에 재투자하라면서 구체적인 지침을 각 부처에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 결과 두 달도 안돼 내년도 글로벌 R&D 예산이 올해보다 3.5배 급격하게 늘었다. 전체 R&D 예산이 10% 넘게 깎인 것과 대비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중한 검토 없는 글로벌 R&D 예산 확대가 자칫 외국 퍼주기식 연구, 특허 유출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한국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6월 29일 각 부처에 '2024년도 주요 R&D 예산안에 대한 부처별 구조조정 및 재투자(안) 제출 요청'이라는 제목의 업무협조문을 보냈다. 이는 전날 있었던 국가재정전략회의의 후속조치로,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회의에서 나눠먹기식 R&D를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함과 동시에 “국제협력은 세계적 수준의 공동연구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했다.

문건에는 R&D 예산의 구체적인 구조조정, 재투자 지침이 포함됐다. 주요 R&D 사업 중 △수주 경쟁률이 2대 1 미만으로 저조한 사업 △나눠먹기·뿌려주기식 사업 등에서 지출을 조정해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특히 폐기할 사업을 '적극 발굴하라'고 당부했다.

구조조정으로 확보한 예산은 △글로벌 R&D △국가전략기술 △인재양성에 재투자하라고 했다. 이 중 글로벌 R&D 분야는 재투자 유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해외와 협력이나 인력 교류를 다루는 과제가 있으면 확대 개편하고, 관련 과제가 없으면 적극 추가하라고도 했다. 제출 기한은 주말을 포함해 나흘 남짓이었다.

이 지침 이후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8월 23일 발표된 내년도 예산안에서 글로벌 R&D는 1조8,000억 원이 책정됐다. 올해 글로벌 R&D 예산(5,075억 원)보다 3.5배, 재정전략회의 이전 계획됐던 예산(6,106억 원)보다 3배 가량 많다. 조승래 의원은 "사실상 외국과 연계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예산을 불려 제출하라는 지시"라면서 "졸속 행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과학자들은 강한 우려를 표했다. 글로벌 R&D는 협력할 국가나 연구자를 찾는 것부터 차근차근 진행해야 하는데, 이렇게 '급조'하면 자칫 해외에 퍼주기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중견 과학자는 "누구와 협력할지 고르고 의사를 타진해 업무협약을 맺는 등 협력 준비에 적어도 1년은 필요하다"면서 "기존 인맥을 동원해 급조하는 연구가 생기고, 눈먼 돈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기술 유출 우려도 있다. 한 이공계 교수는 "손쉽게 글로벌 협력을 했다가 기술을 빼앗길 수 있다"면서 "전략기술 중에서도 취약기술만 골라 협력해야 하는데, 그런 분야는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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