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79개 지역에서 치러진 전국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이 압승을 거뒀다. 국제사회는 선거 과정이 불공정·불투명했으므로 선거 결과도 무의미하다고 보지만, 내년 대선을 통해 또 한 번의 집권 연장을 노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권위와 존재감을 과시하는 결과를 거머쥔 셈이다.
11일(현지시간) 러시아 언론 리아노보스티통신은 전날 지방행정수장, 자치의원 등을 뽑는 지방선거에서 푸틴 대통령이 속한 통합러시아당 후보들이 대거 승리했다고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인용해 보도했다. 선관위는 특히 러시아가 지난해 9월 점령한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 등에서의 통합러시아당 득표율이 70, 80%대를 기록해 다른 지역보다 높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컨대 자포리자 득표율은 83%를 기록했다. 정치적 경쟁자가 많은 수도 모스크바에서도 푸틴 대통령 최측근인 세르게이 소뱌닌 현 모스크바 시장이 76%를 득표해 3선에 성공했다.
이번 선거가 푸틴 정권의 강력한 감시·통제하에서 치러졌다는 점에 비춰 보면, 이 같은 결과는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영국 로이터통신과 독일 도이체벨레 등에 따르면, 러시아 곳곳에서 야당 또는 무소속 후보들은 차량 파손을 당하거나 구금되는 등 출마와 선거 운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다. 러시아의 유권자권리단체 골로스는 "일부 후보의 경우, 군 징병 서류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모스크바 등에서 도입된 전자투표 시스템이 외부의 감시·견제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헤르손에선 여론조사 때 '투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들에게 설명문을 쓰라고 압박하는 일도 있었다고 미국 ABC뉴스는 보도했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선거 조작 및 부정 선거를 강력히 규탄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불법 군사 통제를 합법화하려는 러시아의 헛된 시도를 강력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등에서도 '가짜 선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푸틴 정권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번 선거 결과는 국가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사회의 절대적 통합을 생생히 보여 준다"며 "푸틴 대통령은 아직 내년 대선 출마 여부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출마한다면 그와 경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2021년 자신의 재집권을 가능케 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 개정안에 서명하며 사실상의 종신집권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