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스토킹 살인 1년, "공공화장실 안녕해졌나요"

입력
2023.09.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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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살인 계기 공공화장실 범죄 우려↑
첨단기술 사전예방책은 "실효성 태부족"
사후대책 '비상벨 설치'도 여전히 낙제점

"화장실에 들어가면 누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요."

지난해 9월 14일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순찰을 돌던 20대 여성 역무원이 흉기로 살해당했다. 동료 직원인 가해자 전주환(32)은 상대적으로 외진 지하철 화장실을 범행 장소로 점찍었다. 사건 후 공공화장실이 기피대상이 된 건 물론이다. 대학원생 이선재(28)씨는 아직도 어지간하면 공중화장실을 찾지 않는다. 정 사정이 급하면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 간다. 이씨는 12일 "공공화장실이 과연 안전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은 치안과 관련한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다. 스토킹 범죄의 참혹함을 다시금 일깨웠고,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화장실이 범죄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입증됐다. 정부와 관련 기관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1년이 지난 지금, 시민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한다. 대안의 완결성이 크게 떨어지는 데다, 정책 추진 속도마저 느려 안심할 수 없다고 성토한다.

AI 등 첨단 예방책 봇물... 효과는 "글쎄"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인공지능(AI)에 기반한 '성별 분석 프로그램' 도입이 대표적이다. 지하철 화장실 입구에 설치된 AI 스캐너가 출입자 성별을 확인하고, 남성이 여성 화장실에 출입하는 순간 역사 직원들에게 알리는 시스템이다. 화장실 출입을 아예 원천봉쇄하면 범죄 발생 자체를 막을 것이란 계산에서 나온 발상이다.

현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올해 6월부터 1호선 신설동역에 성별분석 감지 시스템이 구비됐지만, 오작동 사례가 적지 않다. 또 무단출입을 강행했을 때 이를 물리적으로 막는 장치가 따로 없어 범죄 예방에도 역부족이다. 교통공사 노조 관계자는 "대책이 꼼꼼하지 못해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공사는 비상통화장치, 지능형 폐쇄회로(CC)TV 설치 등의 후속 대책도 마련했다. 하지만 전날 공개된 역무원 1,055명 상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대책이 직원 안전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보통'이 응답자의 33.27%, '매우 그렇지 않다'와 '그렇지 않다'라고 답한 이가 33%나 됐다. 직원 3분의 2가 첨단보호 장치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학들도 사건 직후 대책 마련에 적극적이었다. 고려대는 올해 공대 안에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여성임을 인증해야 출입 가능한 '여성안심화장실'을 설치했다. 그러나 최초 인증만 하면 추가 인증을 할 필요가 없어 다른 사람 휴대폰으로 얼마든지 출입이 가능했다. 대학생 김모(25)씨는 "마음만 먹으면 뚫리는데 예방 기능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자체 화장실 비상벨 설치율도 64% 그쳐

사후 대응책 역시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공공화장실에 경찰과 직통으로 연결된 '비상벨' 설치를 확대했다. 7월엔 행정안전부가 비상벨 설치를 의무화하는 조례 표준안을 각 지자체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서울 25개 자치구 중 10곳이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

문제는 속도다. 지난달 기준 '전국 공중화장실 비상벨 등 안전관리시설' 설치율은 64%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지자체가 관리하는 화장실은 전체의 극히 일부다. 단적으로 서울의 경우 구청이 관리하는 공중화장실은 5,000여 곳으로 이 중 직접 비상벨을 설치하여 관리하는 곳은 1,000개가 조금 넘는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자체별 재정 격차가 있어 나눠 설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짓수에만 집착하지 말고 대책 하나를 발표하더라도 부작용과 실효성을 두루 고려한 완성품을 내놓으라는 주문이 나오는 이유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성별 감지 시스템은 오작동하면 자칫 인권침해 소지도 있다"며 신중한 정책 추진을 강조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는 "비상벨 설치율을 높이고 범죄 징후를 감지해 112에 자동 신고하는 시스템이 추가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