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발표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채용비리 조사 결과는 두 눈을 의심케 할 정도다. 독립된 지위를 부여받은 헌법상 기관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후진적 시스템 속에서 벌어진 구조적 비리였다는 점이 확인됐다. 선관위가 실체를 밝히는 데 소극적이었던 이유가 자명해진 만큼, 수사를 통해 철저하게 진상을 밝히고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권익위가 지난 6월부터 조사한 7년간 선관위의 경력채용 162회 중 104회에서 문제가 발견됐고, 구체적 비리 의혹만 353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경력 채용된 384명 중 부정합격 의혹과 관련된 직원이 58명으로 15%에 해당했다. 이 중 특혜성 채용이 31명, 합격자 부정 결정이 29명으로 2명은 두 경우 모두에 해당됐다. 지난 6월 선관위 관계자는 국회에서 4촌 이내 친족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21명이 확인됐다고 밝혔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셈이다. 이마저도 59%가 개인정보 동의서 제출을 거부하는 등 조사에 협조하지 않아, 권익위는 312건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실정법 위반이 명백한 심사위원 등 채용관계자 28명도 함께 고발했다.
구체적인 조사 내용을 보면 더 가관이다. 선관위 고위직 자녀 중에 당일 추천을 받아, 당일 서류를 제출하고, 당일 면접까지 본 뒤 채용된 경우가 확인됐다. 법적 근거 없이 임기제 공무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자격요건 미달자를 합격시킨 사례 등 주먹구구식 채용절차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선관위 관계자들은 조사 과정에서 “규정 미비다” “단순 실수다” “잘 몰랐다”는 식의 변명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 지경이었지만, 선관위는 문제가 불거진 후 제대로 된 내부 조사를 하기보다 이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선관위 개혁 임무를 맡고 외부인사로 투입된 김용빈 사무총장이 "썩은 부위를 도려내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간의 행태를 보면 순탄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총선이 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선관위는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동시에 본연의 위상을 찾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