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1대 대통령 제임스 K. 포크(1845~49 재임)는 지금의 미국 영토 4분의 1을 확장한 19세기 팽창주의의 완성자다. 한 저널리스트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란 구호로 남서부 개척을 정당화한 것도 그가 임기를 시작한 1845년이었고, 개척이란 곧 인디언과의 전쟁, 멕시코와의 전쟁(1846~48)이었다. 특히 미-멕시코전쟁은 남부 노예주 확장 전쟁이어서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이던 링컨 등 공화당 진영의 거센 반발을 샀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전쟁세 납세 거부운동을 벌였을 만큼 국민적 호응도 적은 전쟁이었다.
1845년 시작된 대기근으로 미국으로 집단이주한 아일랜드인들이 먹고살기 위해 그 전쟁에 가세했다. 하지만 그들은 흑인 노예 못지않게 처우와 보직, 승진 등 모든 면에서 차별당했고, 심지어 개종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영국인들이 그랬듯 프로테스탄트 미국인들도 그들을 로마 교황을 우두머리로 여기는 ‘어리석고 게으른 3등 시민’으로 여겼다.
그들 중 일부가 전선 너머 멕시코 진영에서 울려 퍼지는 미사 종소리에 이끌려 탈영을 감행, 가난한 가톨릭의 나라 멕시코 진영으로 귀순했다. 아일랜드인 병사 200여 명은 그렇게, ‘성패트릭 대대’라는 이름의 멕시코군 외인부대로 편성돼 부에나비스타 전투 등 여러 전장에서 멕시코군보다 더 맹렬히 싸웠다고 한다. 부대 깃발에는 아일랜드 상징(Maid of Erin Harp)과 함께 ‘아일랜드여 영원하라’라는 구호가 아일랜드어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고, 성패트릭 대대 생존자 중 멕시코로 귀화하지 않은 약 50명은 탈영병 신분으로 처형당했다. 귀화한 일부는 포로 신분으로 살아남았고, 대대를 이끈 포병 장교 존 라일리(John Riley)는 멕시코군에서 대령까지 지냈다. 그들이 집단 처형된 9월 12일은 멕시코 국가 공식 추모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