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없는 택시가 하루 종일 도심을 달린다... 샌프란시스코의 모험

입력
2023.09.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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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밸리 이야기]<1> 세계 최초 '로보택시 도시'의 탄생

편집자주

내로라 하는 기술 대기업이 태동한 '혁신의 상징' 실리콘밸리.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지만 거주민 중 흑인 비율은 2%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화려한 이름에 가려진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얼굴을 '찐밸리 이야기'에서 만나 보세요.


Q. 차들이 규정 속도 최대치로 쌩쌩 달리고 있는 늦은 밤, 급히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당신의 앞에 자율주행택시가 있다. 운전석에도, 보조석에도 사람이 타지 않은 '완전 무인(無人)'이다. 당신은 이 택시를 탈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문제에 답하는 데 별다른 고민이 없다면 다음 질문은 어떨까.

Q. 아침마다 차로 자녀를 등교시키는 당신. 오늘 따라 피치 못할 일정이 생겨 아이는 다른 차를 타야 한다. 창밖에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부를 수 있는 택시는 자율주행택시뿐이다. 이 택시에 아이를 혼자 태워 보내도 될까.


미래의 얘기 같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선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규제 당국이 자율주행택시의 샌프란시스코 내 연중무휴 운행을 승인하면서다.

자율주행택시, 다른 말로는 로보택시(Robotaxi)가 시험 운행 중인 곳은 많지만 도심 곳곳을 제한 없이 누비면서 돈을 받고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도시는 샌프란시스코가 세계 최초다. 늘 최전선에서 기술 혁신을 이끌어 온 샌프란시스코가 또 하나의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사람들에게 로보택시 전면 허용은 그저 신기해할 수도, 마냥 반길 수만도 없는 일이다. 안전 등을 우려해 로보택시를 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영향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 노동절이었던 4일 로보택시 확대에 반대하는 이들은 어김없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외친다. "우리는 기술의 마루타가 되고 싶지 않다"고. 거칠지만 틀린 표현은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다른 도시들은 샌프란시스코가 겪는 시행착오의 덕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0일 샌프란시스코는 로보택시 전면 허용 딱 한 달째를 맞았다. 그동안 로보택시는 환자를 긴급 이승 중인 응급차를 가로막는 등 크고 작은 문제로 시민들의 불안을 키웠다. 하지만 반대편에선 로보택시 애플리케이션(앱) 다운로드 건수가 폭증했다. 그만큼 큰 우려와 기대가 지금 샌프란시스코엔 공존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시 반대에도 주정부가 '전면 허용' 결단


로보택시 전면 허용은 그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12월 제너럴모터스(GM)의 로보택시 사업부 크루즈와 알파벳의 자회사 웨이모가 "운행 시간, 장소 등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두 회사만 나선 건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료 택시 서비스 자격을 가진 업체가 둘뿐이었기 때문이다. △GM 크루즈는 오후 10시~오전 6시 샌프란시스코 북서부 일부 지역에서만 로보택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고 △웨이모는 보조 운전자가 탄 상태에서 유료로 승객을 받아 왔다.

'아직은 이르다'는 일부의 우려에도 크루즈와 웨이모가 제한 해제를 요청한 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다. GM은 지난해 크루즈 부문에서 전년보다 약 7억 달러 증가한 19억 달러(약 2조5,4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2021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료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음에도 적자 폭이 더 커진 것이다. 웨이모도 비용 부담이 늘면서 올 초 두 차례에 걸쳐 직원의 8%를 정리해고했고, 자율주행 트럭 개발을 멈췄다.

두 업체는 "로보택시가 사람 운전자가 모는 택시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로보택시가 급정거, 차선이탈, 신호위반 등 오류로 도로에 혼란을 일으킨 적은 있지만 사람을 다치게 하는 등 큰 사고를 낸 적은 없다는 게 그 근거다. 운영이 전면 허용되도 시민들의 적응 속도에 맞춰 점점 늘려 갈 것이란 계획도 내놨다. 상당수 시각장애인들은 크루즈·웨이모를 지지한다. 제시 울렌스키는 "로보택시를 타면 내 방식과 속도대로 이동할 수 있다"며 "여성 시각장애인으로서 누군가 내 몸을 더듬거나 공격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로보택시가 100%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고, 스마트폰 앱으로 호출해야 하므로 스마트폰과 친숙하지 않은 이들을 소외시킬 것이란 비판이 거셌다. 기존 택시 운전자와 우버·리프트 등 승차공유 서비스로 돈을 버는 이들은 일자리를 걱정한다. 이동차량 운전을 통해 먹고사는 이들은 샌프란시스코에만 1만 명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정적으로 샌프란시스코시도 "전면 허용은 시기상조"란 의견을 냈다. 찬반의 첨예한 대립에 결정 권한을 가진 캘리포니아 공공시설위원회(CPUC)는 두 차례 결론을 못 내고 결국 지난달 10일 표결에 부쳤다. 결과는 찬성 3표 대 반대 1표. 과반수가 "로보택시가 심각한 안전사고를 낼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운영 확대를 요구한 두 업체가 모두 자국 기업이란 점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실보다 득" 우선한 결단... '자율주행 선도' 입지는 굳혔다


그 후 한 달, 샌프란시스코는 역사적 결정의 후폭풍을 겪는 중이다. 전면 허용 하루 만에 크루즈 10대가 교차로에서 15분 동안 이유 없이 멈춰서 교통 혼잡을 불렀고, 지난달 14일엔 이동 중이던 응급차를 크루즈 2대가 막는 바람에 환자 이송이 90초 늦어졌다. 긴급 출동 중인 소방차와 충돌해 승객 1명이 다친 일도 있다. 결국 캘리포니아 차량관리국(DMV)은 운행 차량 대수를 50% 줄일 것을 크루즈에 요청했고 이에 따라 낮 100대, 밤 300대를 운영하던 크루즈는 각각 50대, 150대로 로보택시 수를 축소했다.

로보택시 확대에 반대하던 이들은 시위의 강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교통 통제에 쓰이는 주황색 원뿔형 물체(고깔)를 크루즈와 웨이모 보닛에 올려 주행을 멈추게 만드는 방식의 반발이 들불처럼 번지는 추세다. 고깔을 올리면 잘 달리던 차가 마비된 듯 멈춰서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이 같은 혼돈은 로보택시에 대한 시민들의 믿음이 공고해질 때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가 얻는 게 많을지 잃을 게 많을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일단 얻은 것 하나는 확실하다. '자율주행 선도 도시'라는 지위다. 이번 결정 전에도 샌프란시스코는 자율주행 산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 △풍부한 기술 인재 △1년 내내 비교적 안정적 날씨 △미국 내 2위 수준의 인구 밀집도 △언덕이 많은 지형 등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시험을 위한 좋은 조건들을 갖춰서다. 2012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자율주행차 관련 규정을 제정해 산업의 법적 기반을 확립한 것도 캘리포니아주였다. 여기에 로보택시 전면 상용화라는 날개까지 달면서, 전 세계 자율주행 관련 업체들이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들 가능성이 커졌다.

이제 각국의 도시들은 샌프란시스코를 지켜보면서 로보택시 도입과 확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니코 라르코 오리건대 교수는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실현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도시에서도 가능할 것이라는 뜻"이라고 지역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말했다. 어쩌면 운전자 없는 택시가 전 세계를 누빌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


샌프란시스코=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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