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꿈, 김정은의 꿈

입력
2023.09.10 15: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마음이 원치 않으면 할 수 없는 이유를 찾게 되고, 하고자 한다면 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2014년 겨울 취재차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았을 때 극동개발부 장관이 남북러 협력을 역설하면서 한국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푸념한 말이다. 인상적인 표현이었다. 그는 러시아 하산~북한 나진항 철도 연결, 남북러 연결 무역 등이 현실화 단계에서 주춤거리는 걸 안타까워했다. 러시아 천연가스를 북한을 거쳐 남한까지 연결하는 가스관 사업이나 시베리아 철도 연결 구상까지 나올 시기였다. 지금의 한미일 협력 못지않게 남북러 협력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당시 우리 자본과 기술에 목맸던 까닭은 '푸틴의 꿈'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집권 3기인 2012년 ‘신동방정책’을 내놓았다. 성장 잠재력이 큰 시베리아와 극동에 대한 대규모 개발 전략이다. 푸틴은 극동개발이 21세기 중대과제라고 선언했다. 극동개발부를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무단점령, 북한의 핵실험 도발 등으로 남북러 협력에는 큰 제동이 걸렸다.

□매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도 신동방정책의 일환이다. 원년인 2015년 푸틴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자유항으로 선언할 정도로 포럼 활성화 의지를 불태웠다. 300년 역사의 극동 함대 사령부도 인근 포키노로 옮겼다.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이 참석했고,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도 모습을 나타낼 정도로 권위와 위상, 투자협약 규모도 높아 갔다. 북한도 대외경제상을 보냈다.

□10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올해 동방경제포럼은 뜻하지 않게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포럼 행사 기간에 푸틴을 만날 것이란 뉴욕타임스 보도 때문이다. 경제협력이 아니라 무기거래가 주목적이라서 문제다. 전쟁으로 포탄, 중화기가 급한 러시아와 핵추진 잠수함 등 첨단 군사기술이 필요한 북한 간의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푸틴이 '김정은의 꿈'을 이뤄 주게 된다면 푸틴의 꿈도, 남북러 협력의 꿈도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진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