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 트라우마 초등교사 또 숨져… 10일간 벌써 5명

입력
2023.09.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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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전북·대전 이어 청주도 극단 선택
교권회복 위한 각종 대책, 비극 계속 되풀이

서울과 경기, 전북에 이어 대전과 청주에서도 극단 선택으로 추정되는 교사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대전 초등교사의 경우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교사 집회에 수차례 참석하는 등 교권 회복에 누구보다 앞장서고도 정작 본인은 4년 가까이 이어진 악성 민원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끝내 떨쳐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서울 서이초 사태 이후 교권 회복을 외치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정부가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8일 대전시교육청과 대전교사노조에 따르면 대전 유성의 한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40대 여교사 A씨가 5일 오후 9시 20분쯤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만인 7일 사망했다. A씨 유가족은 사망 판정 직후, 고인의 신체 조직(피부)을 기증하기로 했다. A씨의 평소 신념에 따른 결정으로 알려졌다. 기증된 신체 조직은 긴급 피부 이식 수술이 필요한 화상 환자 등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교대를 졸업한 뒤 교편을 잡은 A씨는 2019년 근무하던 대전 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담임을 맡고 있던 학급의 한 학생이 교사 지시를 무시하고,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등의 행동을 해 훈육했는데 해당 학생 학부모가 “왜 내 아이를 망신 주느냐”며 교육청과 학교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심적 고통을 겪던 A씨는 병가를 신청했지만, 이후에도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계속돼 오랜 기간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학부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20년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A씨가 해당 학생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큰소리를 친 건 아동학대에 해당된다”는 아동보호기관의 의견을 근거로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그러나 검찰은 추가 조사를 거쳐 그해 10월 A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나 A씨가 올해 인근 다른 초등학교로 전근을 가기 전까지도 같은 학부모로부터 민원이 지속됐다는 게 유족 등의 주장이다. 고인은 최근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접한 뒤 “예전 고통이 떠올라 힘들다”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호소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서울에서 열린 교사 집회에도 수차례 참석하고, 서울 서이초 교사의 49재였던 4일 ‘공교육 멈춤의 날’ 추모 집회에도 병가를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대전에 이어 충북 청주에서도 초등학교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사고 당시 고인이 집에 혼자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극단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다. 지난 7월 서이초 사태 이후 극단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교사는 최근 열흘간 5명에 달한다. 지난 3일엔 경기 용인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앞서 지난달 31일엔 서울 양천구와 전북 군산의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전교사노조 관계자는 “서이초 사건이 끝이길 바랐는데 대전에서도 이런 비극이 일어나니 정말 참담하다”며 “대전시교육청은 숨진 선생님의 사망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A교사 사건과 진상 조사단을 구성해 자세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으며, 사실관계가 드러나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것”이라며 “A교사가 소속된 학교 학생과 교직원 등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전= 최두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