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보건당국의 정책목표는 백신 접종률 제고였다. 당국은 스마트폰에 백신패스를 설치하면서 톡톡이 효과를 봤다. 하지만 통화·문자용으로만 스마트폰을 쓰거나,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들은 QR코드를 찍지 못해 식당에 들어가지 못했다. 어디 백신패스뿐일까. 기차역이나 터미널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벌어진다. 승차권을 구매하려면 키오스크나 모바일앱을 이용해야 하는데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좌절하기 일쑤다. 창구 담당자·관리자 감축 등 행정비용은 줄어들었겠지만 이를 과연 이용자의 복지 증대로 볼 수 있을까. 기술 학습능력 격차에 따른 불평등 확산은 효율성 증대로 정당화할 수 있는 문제일까.
데이터를 이용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 혜택을 받도록 하는 미국의 시빅테크(civic tech) 단체 ‘코드 포 아메리카’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하는 저자는 ‘데이터는 정부라는 기계를 움직이는 기름’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더 많은 데이터가 더 나은 정책을 만들지는 않는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정부 서비스가 시민이 아닌 정부와 공무원들의 편의 위주로 설계·운용되면 소용이 없다. 시민의 편의를 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 가령 넷플릭스가 알고리듬으로 영화를 자동 추천하듯이, 육아 복지 지원 서비스를 신청하는 가난한 젊은 부부에게 육아복지·주택복지를 같이 지원하라고 자동으로 추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구호로서의 디지털 정부가 아니다. 정책 결정에서 배제되고 소외돼 그동안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이들의 불편과 부담을 데이터화하는 일, 바로 '시빅 데이터'를 만드는 일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의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