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국가들이 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이 주도하는 ‘기후 정상회의’를 열고 선진국을 향해 ‘글로벌 탄소세 도입’을 촉구했다. 지구온난화 주범인 부자 국가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해 그 재원을 기후변화 대응에 쓰겠다는 취지다.
아프리카는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대륙이지만, 탄소 배출량은 4%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기후변화의 최대 피해자다. 이에 온실가스 배출국에 재정 지원을 압박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자 “더는 못 참겠다”며 공동행동에 나선 셈이다.
6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아프리카연합(AU) 회원국은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1회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나이로비 선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선언문에서 참가국들은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화석연료 무역, 해상운송, 항공에 대한 탄소세를 포함해 글로벌 금융거래세로 확대될 수 있는 ‘글로벌 탄소세 제도’ 제안을 뒷받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번 회의는 오는 1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를 앞두고 아프리카의 목소리를 결집하자는 차원에서 열렸다. 케냐가 총대를 멨고, 이날 채택한 선언문을 COP28에 제출하기로 했다.
세계기상기구(WMO) 발표를 보면, 2021년 기준 아프리카 국가들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1.04톤이다. 전 세계 평균(4.69톤)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기후변화 피해는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19년 보고서에서 “아프리카만큼 기후변화로 심각한 타격을 받는 대륙은 없을 것”이라며 “건강은 물론 생계, 식량 안보가 기후변화 영향을 받는다”고 밝혔다.
지난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뭄과 홍수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은 사람은 1억1,000만 명에 달했다. 경제적 손실도 85억 달러(약 11조2,000억 원)로 추산됐다. 특히 아프리카의 생계를 책임지는 농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농업 생산성 증가율이 1961년 이후 지난해까지 34%나 감소했다. 보고서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많은 국가에서 기후변화로 농업 생산성이 있는 땅이 부족해졌다”며 “토지와, 물, 목초지를 둘러싼 갈등으로 폭력 사태마저 증가했다”고 전했다.
온실가스 배출국들은 책임을 회피하고만 있다.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은 “14년 전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기후 대응 지원을 위해 매년 1,000억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로이터통신은 “아프리카는 기후변화로 최악의 영향을 받지만, 대처에 필요한 연간 자금 3,000억 달러(약 400조6,500억 원) 중 약 12%만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이번 정상회의에 연사로 참석한 존 케리 미국 기후 특사는 “기후변화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20개국 중 17곳이 아프리카에 있고, 미국을 포함해 가장 부유한 20개국이 세계 탄소 배출량의 80%를 생산한다”며 기후 불평등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탄소세 논의 요청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직 탄소 가격 책정 메커니즘을 수용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이지리아, 이집트 등 아프리카 경제대국 정상들이 이번 회의에 불참한 것도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다. 세계 최다 탄소 배출국이자 아프리카의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에서도 연사로 참석한 인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