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공공의 적'이 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세뇌 교육’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자신이 직접 학생들을 만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가 하면 러시아 교육부는 새 학기에 맞춰 학생들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을 미화하는 새 역사교과서를 배포했다. 소총·수류탄 사용법 교육은 의무 과정이 됐다.
크림반도 강제병합 직후인 2015년 푸틴 대통령은 8~18세 청소년으로 구성된 청년 군사조직 ‘유나르미야’를 출범시켜 ‘푸틴의 전사들’로 키웠다. 아이들을 세뇌시켜 그의 철권통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을 타개하겠다는 계산이었다. AP통신은 2일(현지시간) “23년간 통치한 푸틴은 자신이 기른 청년 세대가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교육과정 개편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청소년들을 더욱 충성스러운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더 집요한 전략을 세웠다는 것이다.
러시아 고등학교 11학년(17세) 학생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는 나쁘다”라는 서방 사상에 물든 우크라이나의 적개심이 때문이며 △전쟁의 최대 수혜국은 미국이고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작전으로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구했다”는 내용 등이 담긴 개정 역사교과서로 수업을 받는다. 이 교과서는 5개월 만에 졸속 개정됐다.
선전용 교과서로 교육받은 청소년들을 ‘전쟁 예비 인력’으로 양성하는 게 정부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남학생들에겐 AK-47 소총과 수류탄 사용법을 가르치고 여학생들에게 전장에서의 응급 처치법을 교육한다. 푸틴 대통령도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1일 새 학기 시작을 기념해 분야별 우등생 30명을 대상으로 공개 수업을 하며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는 천하무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강변했다.
옛소련 시절을 연상시키는 군국주의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교실에 스며들었다. 지난해 9월 ‘중요한 대화’라는 과정을 개설해 매주 월요일마다 러시아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애국심을 주제로 한 수업을 듣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학생들은 “군대를 사랑하라”는 주제의 시를 암송해야 했다. 교사들의 정치 행위는 일절 금지됐고 이를 위반하면 해고됐다.
푸틴 대통령이 세뇌 정치에 몰두하는 건 위기의식 때문이다. 2000년 대통령 권좌에 오른 그는 23년간 대통령과 총리를 오가며 집권했고, 이 기간에 성장한 청년들은 자신의 든든한 지지기반이 될 것이라 믿었다. 2015년 “나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것”이라고 맹세하며 출범한 ‘유나르미야’의 회원이 130만 명에 이른 것도 고무적이었다.
푸틴 대통령이 교육시킨 청년들은 그러나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옛소련의 청년들과 달랐다. 청년들의 상당수가 러시아를 위해 참전하는 대신 망명을 택했다. 군 당국이 인해전술을 펴는 전통 러시아식 전술을 피한 것도, 사망한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끄는 용병기업 바그너에 손을 빌린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 방문연구원인 니콜라이 페트로프는 AP에 “학교는 한동안 푸틴의 관심 밖에 있었다"며 "그러나 최근 들어 투옥된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주도하는 집회에 청년들이 몰리고 교사들이 야당을 지지하는 움직임에 위기를 느낀 것이 다시 푸틴을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