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이든 누구에게든 친절하고 양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기독교적 삶의 덕목이다. 신약성서의 로마서 13장 8절은 심지어 '묻지마 사랑'을 하라고 이렇게 가르친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신약성서를 시작하는 복음서가 예수의 행적과 말씀을 전한다면, 곧이어 나오는 로마서는 예수의 희생적 죽음이 갖는 의의를 서술한다. 마지막에는 그 의의를 따르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권면한다. 위 구절이 여기에 속한다.
사랑의 빚을 지라는 권면은 어떤 것일까? 만약 옆 동료에게 돈을 빚졌다면?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마음에서 독촉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 어서 빚을 갚아야 할 텐데. 그래서 로마서의 위 구절이 아름답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빚을 진 것처럼 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럼 주변의 누구든 볼 때마다 마음에 이런 소리가 들릴 것이다. 빨리 사랑을 줘야 할 텐데.
그런데 인간이 아무나를 사랑씩이나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아니 교회를 다니는 신앙인도, 그저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상식만 지켜도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로마서는 뒤이어 10절에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큰 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악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도 족하다.
예수의 희생을 본받아 사는 것이 마치 순교자처럼 살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뒤이은 로마서의 내용은 그저 이웃에게 피해 주지 않고 단정하게 살 것을 부탁한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13:13),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14:13),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며 살아가라고 당부한다(15:1).
비루한 우리 인간에게 사랑보다는 친절이나 양보가 더 현실적인 적용이다. 세상 어느 사람을 만나든지 '친절해야지', '양보해야지', '내가 손해 봐야지', '내가 져야지'를 맘속에 되뇌는 것이다. 그래서 참 신앙인은 종교단체에 열심히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에게 친절한 사람이다. 위협적인 운전을 하지 않고 오히려 양보하며, 층간소음에 주의하고 길거리에 침을 뱉지 않는 것이 신앙이다.
올여름은 유난했다. 짜증스러운 더위와 묻지마 폭력이 유난했다. 어서 가을바람이 왔으면. '묻지마 친절' 같은 선선한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