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챙겨 가."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에게 엄마가 말한다. 비에 젖을 일이 없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묻어난다. 필요한 물건을 찾아서 갖춰 놓는 일을 우리말로 '챙긴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현재의 필요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짐을 챙기다, 서류를 챙기다' 등 나중에 쓰일 무엇을 빠뜨리지 않았는지 살피는 일도 그러하다. 또 '하루 밥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처럼 거르지 않고 하는 일도 '챙기다'이다. 동생을 챙기고, 주위 사람의 생일을 잘 챙기는 것처럼 주위를 잘 거두는 인정을 드러낼 때 많이 쓰인다. 우리말 '챙기다'는 인색한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남을 살피는 문화가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챙기다'는 무언가를 '자기 것'으로 취할 때에도 쓴다. 거스름돈을 챙기고, 제 몫을 챙기는 행위 등인데, 한때 이기적이라고 비난한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이런 행위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마음 챙기기'가 바로 그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챙기는 일이 개인에게든 사회에든 중요시되었음을 알려준다. 드라마나 광고에서는 주어진 시간의 일부를 그저 가만히,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쓰라는 메시지가 많이 뜬다. 모닥불이 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만 보거나, 물이나 어항의 물고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시간을 즐기라는 '불멍, 물멍'이란 말이 등장했다. 숲의 바람 소리나 빗물 떨어지는 소리에 삶을 스스로 정지시키고 쉬어 가는 '숲멍, 비멍'도 그런 순간을 챙기라 한다.
살아가면서 챙겨야 할 것이 또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말이다. '마음대로'라는 말처럼, 사람은 마음을 따라 행동에 이른다. 마음에 없는 일을 할 수 있는가? 마음은 타고난 품성이자, 감정과 기억을 담아 두는 곳이다. 어쩌다 생각이 흔들리면 마음을 잡거나 붙인다. 관심이 생기는 무엇이라면 마음에 들이거나 마음에 두려 하며, 아예 마음을 먹으며 잘해 내기로 작정한다. 그런 마음은 말로 통한다. 어느 학자는 '마음은 인간의 단어 저장고'라고 했다. 마음은 한 사람의 생각을 차곡차곡 담아 둔 서랍장이다. 곱게 접어 챙겨 둔 말은 마음을 정하거나 전하는 표식이다. 그간 '우리말 톺아보기' 마당에서 독자들과 우리말을 챙기는 시간을 나눴다. 필자에게 더 큰 행복이었다. 말에 마음을 주고, 말을 마음속에 들이면서 '내 말을 챙기는 마음'이 커져가는 그런 세상을 나는 여전히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