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연령 85세 칠곡군의 래퍼 할머니들, 8인조 그룹 결성

입력
2023.08.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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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와 7공주' 창단, 6·25 경험 담은 노래도
"전쟁 아픔 떠오르지만, 고통 알리기 위해"
연예인 꿈꾸던 공무원, 한글 선생님이 지도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이 래퍼로 변신해 8인조 그룹을 결성했다.

8월 31일 칠곡군에 따르면 전날 지천면 신4리 경로당에서 박점순(85) 할머니를 리더로 하는 그룹 ‘수니와 7공주’가 창단됐다. 수니는 박점순 할머니의 이름 마지막 글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멤버 중에는 정두이(92) 할머니가 최고령, 장옥금(75) 할머니가 최연소다. 평균연령은 85세다.

8명의 할머니는 랩 공연을 위해 자신들이 직접 썼던 시 7편을 가사로 바꾸고 음악을 입혔다. ‘딱꽁 딱꽁’과 ‘빨갱이’ 등 6ㆍ25전쟁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래도 있다. ‘딱꽁 딱꽁’은 총소리를 폭죽 소리로 오해한 데서 영감을 얻은 곡이고, ‘빨갱이’는 “빨갱이는 눈과 코가 빨간 줄 알았지 예~, 그냥 우리와 같이 불쌍한 사람 예~” 등 전쟁 당시 북한군을 만난 소감을 가사로 되살렸다. 이필선(87) 할머니는 “성주 가야산에서 북한군을 마주하기 전까지 빨갱이는 온몸이 빨갛다고 생각했다”라며 “랩을 할 때마다 그날의 아픔이 떠오르지만 아이들에게 전쟁의 고통과 통일, 평화의 필요성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또 ‘학교 종이 댕댕댕’ ‘나는 지금 학생이다’를 통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한을 표현했다. 고인이 된 남편이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인 깻잎전을 소재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들깻잎’이라는 곡도 연습 중이다. 특히 박점순 할머니는 “고추밭에 고추 따고 수박밭에 수박 따고” 등 9초간 54음절을 뱉어내는 놀라운 랩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할머니들의 랩 선생님은 공무원이 되기 전 한때 연예인을 꿈꿨던 안태기(왜관읍) 주무관이다. 안 주무관은 2주에 한 번 경로당을 찾아 재능 기부에 나선다. 칠곡군 성인문해교실에서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정우정씨도 유튜브 등 매체를 통해 지도를 돕고 있다. 할머니들은 초등학교와 지역 축제 등에서 데뷔전을 치른다는 목표로 맹연습에 돌입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칠곡 할머니들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며 “한글 교육으로 시작된 칠곡 할머니의 유쾌한 도전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힘쓰겠다”라고 말했다.


칠곡= 류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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