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약방의 감초(甘草)'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어떤 모임이나 일에 빠짐없이 참여하거나 관여하는 이들을 대부분의 한약에 들어가는 감초에 빗댄 속담입니다. 그만큼 감초는 한약재로서 탁월한 효능을 자랑합니다. 또한 이름처럼 설탕보다 수십 배 강한 단맛을 내 콜라 같은 음료나 건강기능식품, 심지어 담배와 반려동물 사료에도 사용됩니다. 특히 제품명에 '한방'이 적혀 있다면 감초가 함유되지 않은 걸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죠.
약방이 처음 등장한 조선시대는 물론 그 이전부터 감초는 요긴하게 사용됐을 테고 21세기에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감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한의학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약재로 쓰이는 감초를 구별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나아가 "감초 꽃이나 열매를 본 적 있나요"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고개를 젓습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왜냐하면 감초는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식물이 아니니까요. 약재용 감초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국내에서도 감초 재배가 이뤄지고 있지만 워낙 소규모라 꽃이나 열매를 직접 보기란 어려운 일이죠.
1일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과 한국한의학연구원에 따르면 감초는 길이 1m에 지름이 0.6~3.5㎝ 정도인 콩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약성이 있는 부분은 인삼처럼 갈색을 띠는 지하부(뿌리)입니다. 인삼은 5년을 재배한 5년근을 주로 소비하는데, 감초는 2년을 키워야 뿌리가 비대해지고 유효성분이 차오른다고 합니다.
감초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애용하는 약초입니다. 기원전 175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 최초 법전인 '함무라비법전', 기원전 3세기의 '히포크라테스 전집'에도 감초 사용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감초는 건조한 지역 모래땅이나 강가, 산기슭 초지에서 자생하고 소금기가 있는 땅에서도 자랄 수 있습니다. 품종은 원산지에 따라 광과(光果)감초, 창과(脹果)감초, 만주감초로 분류됩니다. 광과감초는 중앙아시아를 기점으로 유럽에서 많이 자생해 유럽감초라고도 부릅니다. 창과감초는 주로 중국 신장 위구르 등 중앙아시아, 만주감초는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이 원산지입니다. 한의학적으로는 만주감초가 가장 약효가 좋고 광과와 창과는 비슷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부터 사용한 감초는 만주감초입니다.
감초는 한의학에서 △사화해독(瀉火解毒·열을 내리고 독을 푸는 작용) △화담지해(化痰止咳·가래를 삭이고 기침을 멎는 작용) △보비화위(補脾和胃·비장을 강화하고 위장을 편안하게 하는 작용)에 뛰어난 약재입니다. 또한 여러 약재를 조화하는 성질도 뛰어납니다. 지금도 한약 처방의 70% 정도에 감초가 빠지지 않는 이유이죠.
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장은 "용량이 많으면 독, 적으면 약이 되는 게 모든 약재의 원리인데 다른 약재의 독성을 완화하는 감초가 소량 들어가면 약이 독이 될 가능성을 낮추게 된다"며 "현대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체내에서 생성되는 부신피질호르몬 분해를 억제해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약방의 감초를 국내에서 재배하려는 시도는 조선시대에도 수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원예특작과학원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세종대왕을 시작으로 문종, 세조, 성종 등이 감초 재배를 명했지만 실패한 구체적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실패 이유는 건조하고 서늘한 자생지와 다른 한반도의 여름철 고온다습한 기후입니다. 2년을 키워야 하는데 주로 장마철에 잎이 떨어지고 병이 발생하는 등 생리장해로 인해 수량과 품질이 기준‧규격에 미달됐던 겁니다. 그동안 이렇게 국내 재배에 성공하지 못한 감초는 만주감초입니다.
광과감초는 1950, 60년대 국내에 도입돼 현재 충북 제천시, 경남 산청군 등의 일부 농가에서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을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파돼 미국에서 키우던 감초가 국내로 온 거니 고유 품종은 아닙니다. 현재 재배하는 양은 전체 사용량에 비해 미미하고 약재가 아닌 식품용으로만 소비되고 있습니다. 의약품용은 아직도 100% 중국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 등에서 수입합니다. 만주감초 물량이 부족해 광과감초도 들여오고 있는 것이죠.
의약품용 감초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집계하기 때문에 사용량이 명확합니다. 2019년에 433톤이었습니다. 이외 식품용 등은 정확한 사용량 통계가 잡히지 않습니다. 수입 감초는 말린 상태인데, 국내 생산량은 말리기 전 무게라 여기서 생기는 차이도 상당하고요. 감초는 말리면 무게가 5분의 1에서 7분의 1까지 줄어든다고 합니다. 정확한 통계가 없으니 업계에서도 연간 적게는 3,000여 톤에서 최대 1만 톤까지 소비하지 않을까 추정하는 수준입니다. 국내 생산량을 감안하면 의약품용과 식품용을 합쳐 자급률은 6% 정도라고 합니다.
감초를 수입에 의존하던 한국에서 올해 세종대왕이 놀라실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천시의 농지 1만 ㎡에 국내 기술로 개발한 새로운 감초 품종 원감(元甘) 재배가 시작된 겁니다. 감초 국산화를 시도한 지 600년 만의 쾌거입니다.
원감은 원예특작과학원이 2006년 개발에 착수해 2014년 선보인 품종입니다. 국내에서 키우기가 상대적으로 나은 광과감초와 재배는 어렵지만 약성이 뛰어난 만주감초 이종교배에 성공했습니다. 독성시험에서도 문제가 없었고 기존 감초와 약성이 동등한 수준인 품종입니다. 원감을 개발한 이정훈 원예과학원 약용작물과 농업연구사(이학박사)는 "우리나라에서는 감초 꽃이 잘 안 피고 종자 생산이 어려워 종자 번식이 아닌 '영양체증식기술'로 종근(씨뿌리)을 만들어 식재하는 기술을 적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재배기술 개발, 생산성 및 지역 적응성 검증을 마친 원감은 올해 1월 '대한민국 약전'에 등재가 완료됐습니다. 연구 시작부터 따지면 17년이 걸린 셈입니다. 식약처 고시인 약전에 포함돼야 식의약품으로 사용이 가능한데, 기존에는 광과·창과·만주감초 세 가지 종만 약전에 올라 있었습니다.
원예과학원은 감초 명맥을 유지해 온 제천시를 주산지로 정하고 올해 본격적인 재배에 들어갔습니다. 내년 말 첫 생산량은 10톤 정도입니다. 제천시 외에 충남 금산군, 전북 김제시와 익산시 등에도 종근을 보급해 2025년까지 감초 국산화율을 15%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이정훈 연구사는 "최근 약용 작물 재배가 상당히 위축된 우리 농가에 원감이 새로운 소득 자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