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묘가정서 고양이 자율배식.. 해도 괜찮을까요?

입력
2023.08.31 09:00
'대신 물어봐 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반려동물의 행동문제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치료하는 ‘하이 반려동물 행동 클리닉’의 원장 이우장 수의사입니다. 이번 사연은 자율배식을 하는 다묘 가정에서 한 아이는 밥을 계속 남기고, 나머지 아이들은 남은 밥을 계속 먹어서 살이 찌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네요.

사실 사연자님의 고양이처럼 정해진 양에서 배고플 때마다 조금씩 나눠 먹는 스타일은 지극히 정상으로 봅니다. 특히 고양이 비만도 체크(BCS)에서도 정상이고 체중이 유지가 되고 있다면 해당 고양이보다는 점점 살이 찌고 있는 다른 고양이가 더 문제로 보입니다. 원래도 야생의 고양이는 하루에 여러 번 (약 10~20회) 사냥을 시도하고 대략 30~50% 성공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조금씩 여러 번 나눠서 먹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문제는 다묘 가정에서 자율배식 때 사연처럼 배식에 문제가 생길 때인데, 그렇다고 자율배식 자체가 문제일까요? 이번 시간에는 고양이 자율배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고양이 자율급식의 장단점?

고양이에서의 자율배식은 물론 장단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제한급식 중에는 고양이가 배고플 때마다 보호자에게 가서 울거나 괴롭히는 등 요구성 행동을 보일 수 있지만 자율배식 시에는 배고플 때마다 조금씩 나눠서 먹을 수 있기에 배고픔과 관련한 요구성 행동을 보이진 않습니다. 따라서 적정량을 제공하면서 고양이의 체중을 주기적으로 확인했을 때 유지가 잘 되고 있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반대로 제공하는 음식에 제한이 없다면 과식으로 인해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비만은 관절염, 심혈관계 질환 등에 대한 리스크가 증가하기 때문에 체중관리가 중요합니다. 또한 다묘 가정에서는 따로 분리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면 각각의 고양이의 식욕 변화나 식사량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고양이 자율배식, 비만으로 이어진다면?

자율배식을 하면서 다른 고양이가 와서 남은 밥을 자꾸 먹어버린다면, 두 마리의 고양이가 모두 영양학적 불균형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개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런 경우엔 일단 자율배식에서 점차 제한급식으로 전환하는 방법이 보호자께서 바로 개입하기는 쉬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성묘부터 하루 2회 정도로 제한급식 하는 경우 밥을 줄 때 배고프기 때문에 바로 먹는 편이며, 만약 밥그릇에 사료가 남아 있다면 밥그릇을 치운 뒤 다음 배식 시간에 같이 주시는 것도 가능합니다. 제한급식을 하면서도 다른 고양이의 밥그릇을 탐낼 정도라면 고양이들끼리 분리시킨 채로 식사를 제공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분리시킬 공간이 부족하거나 어렵다면 최대한 서로 식사하는 공간을 멀리 떨어트려주는 것이 낫습니다. 일반적으로 식사 시에 분리하더라도 다시 자유롭게 돌아다닐 때는 사료가 남아 있는 밥그릇을 모두 치우는 것이 좋습니다. 초반에는 이러한 변화 때문에 중간에 배고플 때마다 요구성 행동들이 나타날 수 있는데, 결국 하루 섭취량이 유지되고 있다면 무시하면서 루틴을 형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양이 자율배식의 대안?

물론, 사람도 개인차가 있듯이 각각의 고양이는 다르다고 봅니다. 고양이가 제한급식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거나, 보호자께서 제한급식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면 다른 대안 방법도 있습니다. 마이크로칩으로 개별 고양이를 인식해서 열리도록 하는 급식기를 사용해 볼 수 있을텐데요, 이러한 형태의 급식기는 특히 특정 고양이가 정해진 시간마다 약을 먹어야 될 때나 처방식을 먹어야 할 때 활용하기 좋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연에서는 밥을 남겨서 문제인 고양이에게 마이크로칩 인식형 급식기를 적용해서 본인의 급식기는 본인만 먹을 수 있게 되는 거죠.

또한 사연자님의 경우 고양이가 밥그릇 앞에 앉아 있을 때마다 밥을 준다면, 관심과 식사를 동시에 주기 때문에 고양이 입장에서는 엄청난 보상이 됩니다. 즉, 사연자님께서 이 행동을 고양이에게 ‘강화’ 또는 교육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고양이가 밥을 먹다가도 사연자님이 다가오면 식사를 멈추고 몸을 비비는 것을 봐서는 평소 밥보다는 관심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한 아이로 보이기도 합니다. 밥그릇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밥을 달라는 것이 맞지만 이 경우처럼 밥을 줘도 먹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면 관심이 더 우선 순위일 수 있으며, 조금씩 자주 먹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도 이해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가끔씩 사냥 놀이와 먹이를 연관시킬 수 있는 먹이 퍼즐 장난감 (food puzzle toys)류를 고양이에게 별도로 제공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다양한 먹이퍼즐 장난감이 있지만, 이것 또한 개인 취향이기 때문에 DIY부터 여러 종류 테스트해 보시고, 보통 고양이는 먹이퍼즐류를 사용하는데 적응 기간이 개들보다 오래 걸린다는 것을 염두해서 사용하세요. 특히 먹이퍼즐 장난감을 사용하더라도 고양이는 노력을 통해 음식을 얻는 ‘contrafreeloading’ 개념보다는 공짜로 음식을 얻으려고 하는 경향이 높다라는 연구결과도 있기 때문에 먹이퍼즐을 제공하실 때는 하루 섭취량의 일부만 사용하시는 것을 권장하고,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 확인 후에 조금씩 늘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까지 고양이의 자율급식과 제한급식의 장단점 및 자율급식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개입 방법까지 알아보았는데요. 위에 나온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부디 사연자님의 고양이가 밥그릇을 뺏기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반려생활 속 질문, 대신 물어봐 드립니다▽▼


이우장 ‘하이 반려동물 행동클리닉’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