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경작의 역사를 보유한 예멘 커피

입력
2023.08.29 20:00
25면

편집자주

싱글오리진? 가공방법? 컵 노트? 커핑 점수? 품종? 제일 비싼 커피? 제일 저렴한 커피?.... 첫 방문한 카페에서 내게 맞는 커피를 골라내는 방법에는 각각의 인문학적 의미가 담겨있다. 4주마다 세계의 다양한 커피 이야기를 인문지리학자의 시선으로 소개한다.

에스프레소는 강하고 진한 풍미를 가진 커피 음료로,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커피 베이스의 기본 형태다. 이런 에스프레소 기반의 커피 중에 '카페 모카'와 '카페 라테'가 있다. 둘 사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원료와 풍미, 단맛의 정도, 그리고 커피와 초콜릿의 첨가 여부가 그것이다. 카페 모카는 초콜릿 시럽이나 초콜릿 소스가 필수적으로 첨가되어 있어 초콜릿 향과 맛이 강조된다. 카페 라테는 일반적으로 커피의 특유한 풍미가 주를 이루며, 초콜릿과는 관련이 없다.

'카페 모카'는 모카 마타리(Mocha Mattari)라는 커피 품종의 특징적 맛에서 탄생했다. 모카 마타리는 커피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초콜릿 향이 특징이며, 이 음료의 이름은 예멘의 모카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로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이 품종은 예멘과 에티오피아에서 주로 자라는데, 그런 이유로 카페 모카를 만들 때 초콜릿을 첨가해 모카 특유의 초콜릿 향을 재현하려고 한 것이다.

카페 모카 덕분에 '모카'는 흔히 '초콜릿'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데 커피 메이커 중 하나인 모카 포트(Moka pot)를 지칭할 때는 '커피'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원을 따지면 모카는 예멘의 항구 이름으로, 모카항은 한때 세계 최대 커피 무역항이었다.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예멘은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된 커피가 건너와 경작이 시작된 곳이다. 예멘의 모카항에서 커피가 유럽 전역으로 전해지면서 예멘 커피는 모카 커피로 소개된다.

예멘은 15세기부터 커피를 재배했다고 알려졌는데, 사암 토양과 적절한 기후 조건은 커피 생산에 이상적이어서 커피의 생산과 유통의 중심지가 됐다. 예멘의 고지대에서는 아라비카 커피 품종이 주로 재배되며, 특유의 아로마와 풍미를 가진 커피가 자란다. 예멘의 커피 경작과 관련해서 많이 언급되는 계단식 구조는 커피를 재배하기 위해 고산지대 경사면을 활용하여 만든 작은 계단 형태의 테라스를 의미한다. 이 계단식 구조는 땅의 침식을 막고, 물이 흐르는 것을 용이하게 하며, 커피가 자라는데 최적 환경을 갖게 한다. 예멘 커피의 가공 방식은 건조식(내추럴)을 따른다. 내추럴 가공은 에티오피아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한 방식으로, 열대 기후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활용해 커피 체리를 건조시키면서, 그 지역만의 고유한 커피 맛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

예멘 커피라고 하면 모카 마타리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 커피와 함께 세계 3대 프리미엄 커피를 지칭할 때 항상 등장한다. 예멘 마타리 커피 맛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과일향과 신맛, 보디감이 좋은 게 특징이다. 그러나 명성에 맞는 고급 예멘 마타리 커피를 맛보는 일이 쉽지는 않다. 고품질의 블루마운틴이나 코나 커피를 상상하면서 마타리 커피를 접하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적 재앙'이라고 부르는 예멘 지역의 내전으로 커피 생산량이 급감하고 품질관리도 이뤄지지 않아 비롯된 일이다. 2022년 8월 국가 공인 예멘 내셔널 커피 옥션(National Yemen Coffee Auction)이 개최되면서 예멘 커피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옥션은 예멘 커피 산업의 발전과 예멘 커피의 품질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계속 열리고 있다. 이 옥션은 예멘 커피 생산자들과 커피 업계 전문가들의 참여로 발전해오고 있으며, 예멘 커피 고유의 맛과 향을 강조하며 세계 커피 시장에서의 위치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멘은 특유의 문화와 자연경관, 역사적인 유산을 가진 다양한 관광 명소들이 있지만, 현재는 정치적 불안정으로 방문할 경우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 수년에 걸친 내전으로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해외안전 관련 여행경보에 따르면 예멘은 흑색경보(여행금지) 국가다. 아쉽지만, 일반인이 커피 투어를 목적으로 예멘을 방문하는 일이 아직은 요원하다.

윤오순 에티오피아커피클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