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과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이전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여당은 정율성을 깎아내리고, 야당은 홍범도를 띄우는 데 필사적이다. 정부가 운을 띄우자 이념·역사 논쟁으로 번지며 순식간에 전선이 확장돼 좀체 수습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보훈부가 먼저 불을 지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박민식 장관)"며 광주시가 추진하는 정율성 역사공원을 직격한 데 이어 헌법소원을 통한 추가 공세를 예고했다. 또한 헌법 가치에 맞게 예산을 집행하도록 법 개정도 준비하고 있다.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에 설치한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재배치를 거론하며 가세했다. 이종섭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장교 양성기관에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고 말했다. 홍범도 장군의 해방 이전 소련공산당 활동 이력을 겨냥한 것이다.
이처럼 이념 잣대에 따라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배제하거나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는 정권마다 반복돼왔다. 문재인 정부의 김원봉 서훈,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이명박 정부 당시 건국절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은 '정율성 기념공원'을 저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태규 의원은 "(정율성은) 독립운동 성격이 불분명해서 문재인 정부조차 유공자 선정을 포기했고, 중국 공산당 활동을 한 자"라며 "정율성 우상화 교육이 대한민국에 맞는지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백경훈 상근부대변인은 "공산 침략의 부역자 정율성이 더불어민주당에는 독립영웅인가"라며 "민주당은 정율성 우상화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했다.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는 '독립운동은 기려야 하지만, 흉상 위치가 적절치 않다'는 수준의 지적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관련 문제를 제기한 신원식 의원은 27일 본보 통화에서 "우리가 독립군 정신을 계승하고 선양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국군, 특히 육군의 정체성은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난 뒤 6·25 전쟁에서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구한 것인데 홍범도 장군은 소련 군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방부 방침대로 독립기념관으로 옮기는 것이 낫다"고 덧붙였다.
다만 홍범도 장군을 논쟁의 중심에 끌어들이는 것을 놓고 우려 또한 적지 않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북한군 출신도 아니고 그 전쟁에 가담했던 중공군 출신도 아닌데 왜 그런 문제가 이제 와서 논란이 되는가"라며 "오버해도 너무 오버"라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종북·좌익에 대해서는 일제시대 이력까지 끄집어내 매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념편향이고 이념과잉"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당 차원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내지 않고 있다. 당 관계자는 "6·25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분이기 때문에 좀 다르다"고 말했다. 홍범도 장군은 해방 이전인 1943년 숨졌다.
반면 민주당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집중 공세를 퍼붓고 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항일 독립 투쟁의 역사를 지우고, 우리 군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역사적·반헌법적 처사"라며 "'공산주의 경력'이 철거 이유면 남조선로동당 조직책 출신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숱한 흔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답하라"고 촉구했다. 강선우 대변인은 "독립영웅 흉상은 철거하면서 그 자리에 만주군 출신 백선엽 장군의 흉상 설치를 검토한다"며 "육사 생도들에게 독립투혼 대신 반민족 행위를 배우라는 메시지냐"고 비판했다. 문 전 대통령도 페이스북에서 "우리 국군의 뿌리가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냐"며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이와 달리 정율성 역사공원에 대해서는 가급적 당 차원의 대응을 피하고 있다. 광주에 지역구를 둔 이병훈 의원이 "광주는 노태우 정부 이래로 이어져 온 한중 간 친선과 문화교류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정도다. 권 수석대변인은 이날 관련 질의에 "광주시 차원에서 대응하기로 했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