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그린 미래에선 범죄 발생을 예측해 사전에 막는 프리크라임(PreCrime) 시스템이 존재한다. 범죄예방부서 소속 형사는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들의 살인예고를 토대로 ‘예비살인범’들을 체포한다.
이제 영화 속 상상력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범죄를 예언하는 주체가 소수의 선지자에서 ‘인공지능(AI)’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경찰은 최근 잇단 흉악범죄로 치안력 확충에 초점을 맞춘 대규모 조직개편을 예고했다. 여러 개편 방안 중에는 제한된 인력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효율적 범죄예방이 가능한 AI 도입도 들어 있다.
2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과는 학대예방경찰관(APO) 업무관리시스템에 스토킹, 가정폭력, 노인아동학대 등의 범죄위험성 정보를 학습한 대화생성형 AI, ‘챗봇’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 스토킹처벌법 제정으로 가해자 신고이력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시스템 기능을 개선하는 중인데, AI를 함께 활용해 신속하게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AI가 관련 데이터를 학습할 경우 고위험 피해자를 상대로 빠른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APO가 AI 챗봇에 “가정폭력 가해자 A씨의 재범 가능성을 알려달라”고 물으면, AI는 “A씨의 현재 음주빈도를 볼 때 폭행 재발 확률은 80%입니다. 피해자 분리 등 긴급조치가 필요합니다”라고 답하는 모델도 도입이 가능하다. 재범 조짐을 단순히 수사관의 직감에 기대기보다 AI가 수치화한 자료를 제공해 체계적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는 셈이다.
AI가 학습할 데이터는 이미 경찰 내부에 상당수 축적돼 있다. 예컨대 경찰은 지난해 10월 범죄행위자 재발위험도 연구를 거쳐 가ㆍ피해자의 특성과 범죄 재발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가해자는 △약물중독 여부 △폭행빈도 △음주빈도 △정신건강 상태 등을, 피해자는 △건강상태 △경제적 빈곤 여부 등의 각 사례를 항목화해 이를 수치로 만들었다. 여기에 전국에 배치된 700여 명의 APO가 실시간으로 사례 데이터를 입력하고, AI의 학습량이 늘어나면 예측 정확도는 더 높아지게 된다.
AI 시스템은 경찰이 2021년부터 활용해온 범죄위험도 예측분석체계 ‘프리카스(Pre-CAS)’와 비교해도 한층 진일보한 것이다. 프리카스는 112신고 건수 등의 빅데이터가 중심이 된 지역 기반 예방 시스템이다. 우범지역 순찰ㆍ거점근무를 강화하고, 정보수집을 늘리는 등 일반예방에 중점을 뒀다. 반면 AI가 가ㆍ피해자 등의 개인 특성을 분석해 특정인의 범죄를 미리 차단하는 ‘핀셋’ 예방은 첫 시도다.
경찰이 자체 개발한 AI도 등장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는 이달 초 구글의 자연어처리모델 일렉트라를 기반으로 만든 폴리일렉트라(Poli-Electra) 개발을 완료했다. 연구소는 우선 112신고 데이터 5,000만 건을 학습시켜 올해 하반기까지 이 모델의 효과를 검증하겠다는 계획이다. 112상황실 근무자가 “남편 소주병 폭행”을 입력하면, 폴리일렉트라가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ㆍ특수상해”라고 죄명을 제시해주는 등 범죄 대응 시간을 단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만 AI 활용 증가에 따른 민감한 정보 유출 등 인권침해 부작용도 상존하는 만큼, 범죄 예방과 개인정보 보호의 균형점을 찾는 것 역시 경찰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경찰도 이런 우려를 감안해 APO시스템 AI에 어떤 초거대언어모델(LLM)을 적용할지 등 백지 상태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기초공사도 아닌 설계부터 시작해야 하는 초기 구상 단계”라며 “내년 상반기나 돼야 자세한 밑그림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