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 뛰어야 하나..." 日 오염수 방류에 한숨 쉬는 새내기 해녀들

입력
2023.08.2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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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방류, 젊은 해녀들에게도 직격탄
문화유산 전승 자부심에 고된 일상 버텨
수산물 소비 급감... 당장 생계 위기 걱정
건강 위협, 해녀문화 명맥 끊길까 우려도

20대 끄트머리에 꾸린 내 카페. 보람찼지만, 10년간 몸과 마음을 가게에 바치고 나니 ‘번아웃(신체적ㆍ정신적 탈진)’이 왔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간절함은 곧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그즈음 재미를 붙인 프리다이빙에서 가능성을 봤습니다. 홀로 제주행을 택했죠. 제가 정말 물질을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요.”

지난해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에서 해녀 생활을 시작한 정미숙(40)씨 이야기다. 지난해 말 기준 제주해녀 3,226명 중 40대 이하는 89명(2.7%)에 불과하다. 수는 갈수록 줄고 있지만, 젊은 해녀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녀문화를 전승한다는 자긍심으로 고된 작업을 견뎠다. 그러나 정씨는 요즘 ‘해녀로서의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24일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진짜 바다에 버리기 시작하면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로 어민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는 해녀는 두말할 것도 없다. 돈벌이 걱정은 둘째치고 ‘이러다 혹시 내가 마지막 해녀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26일 2년 차 해녀 정씨와 제주해녀협회 청년분과위원회에 소속된 4년 차 해녀 오나영(40)씨에게서 미래를 고민하는 젊은 해녀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먹고살 일도, 내 몸과 마음도 걱정"

오씨는 “딱히 생각이 없을 정도”라며 암담하기만 한 현실을 전했다. 주변국의 결사 반대에도 오염수 방류를 강행한 일본 정부의 조치와 우리 정부의 대응을 보고 큰 무력감을 느꼈다. 정씨도 “일본의 계획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현실화할 줄 몰랐다”면서 “어촌계 해녀들이 차까지 대절해 반대 집회에 나가 목소리를 내도 달라진 건 없었다”고 한숨 쉬었다.

당장 생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예상대로 수산물 소비가 급감했다는 소식에 두 사람은 피가 바싹바싹 마른다. 지금은 금어기라 물질을 쉬고 있으나 곧 이들도 겪게 될 위기다. 정씨는 “나처럼 육지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온 타지 출신들이 특히 문제”라며 “온난화로 수산물 채취량도 줄어드는 판에 수요까지 쪼그라들면 ‘투잡’이나 전직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해녀들도 “처리수(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부르는 명칭)는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자신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분석을 믿고 싶다. 하지만 고무옷 한 장에 의지해 바닷물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처지라 불안감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오씨는 “물질을 할 때 입이 따가울 정도로 바닷물을 마시게 된다”며 “혹여 건강에 해가 될까 10월 초 재개되는 물질도 나가야 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마지막 해녀 원치 않아... 소중한 문화 지켜야"

생계와 건강 위협이 전부는 아니다. 젊은 해녀들에게는 제주해녀의 명맥을 잇는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제주해녀학교 졸업생인 정씨는 “지금도 새내기 해녀는 물질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쉽지 않은데 오염수 방류로 해녀에 관심을 갖는 청년이 더 줄어들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직접 행동에 나선 해녀도 있다. 이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국가기관을 상대로 청구한 헌법소원심판에 대표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린 김은하(48)씨다.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의 7년 차 막내 해녀인 김씨는 24일 노형동 주제주일본국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시민단체 항의 집회에도 유일한 해녀로 참여했다. 정씨와 오씨도 방류 중단 운동에 불이 붙으면 적극 동참할 생각이다.

“숨을 참고 일하지만 숨통을 트이게 만들어주는 것도 물질이에요. 우리가 사랑하는 해녀 일을 마음 놓고 오래 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최다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