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주변의 비명횡사자들

입력
2023.08.24 17: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주변에는 유난히 비명횡사하는 사람이 많다. 23일 추락한 비행기에 탄 것으로 알려진 예브게니 프리고진도 그 명단에 올랐다. 프리고진은 푸틴 입맛을 만족시키는 ‘요리사’로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해, 온라인 여론조작 기관, 전 세계에 전쟁을 수출하는 용병 기업을 운영하며 부를 쌓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 무장 반란을 일으킨 지 두 달 만에 그 운이 다했다.

□비명횡사 리스트 첫 번째 인물은 알렉산더 리트비넨코다. 소련 KGB의 후신 연방보안국(FSB) 요원으로 1998년 당시 국장이던 푸틴을 개혁적 인물로 믿고 FSB 부패를 고발하다, 푸틴 눈 밖에 났다. 결국 푸틴이 대통령이 된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한 후, 2006년 방사성 물질이 든 홍차를 마시고 사망했다. 러시아 미디어 재벌 보리스 베레좁스키는 푸틴이 옐친 후계자가 되는 데 도움을 준 인물이지만, 2001년 망명 후 2013년 영국 자택에서 스카프에 목이 졸린 채 발견된다.

□대통령직에 복귀한 푸틴은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고 이에 따른 국제 제재로 2015년 경제가 파탄 직전에 몰린다. 그해 비명횡사자 명단이 늘어난다. 옐친 대통령 당시 부총리 보리스 넴초프는 개혁의 상징적 인물로 1999년 푸틴 대선을 도왔으나, 결국 갈라서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다, 2015년 2월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등에 총을 맞았다. 푸틴 정부 언론 장관을 지낸 미하일 레신도 같은 해 11월 미국 워싱턴시 호텔 방에서 목이 부러졌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명단이 빠르게 늘어나, 최근까지 러시아 재계 의문사가 수십 건에 달한다. 블라디슬라프 아바예프 가스프롬 은행 부행장은 지난해 4월 모스크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총상으로 숨졌다. 하루 뒤 러 2대 가스기업 CEO 세르게이 프로토세냐는 스페인에서 가족과 함께 목맨 채 발견된다. 9월 라빌 마가노프 러 최대 민간 석유사 회장은 병원 6층 창문에서 떨어졌다. 과연 푸틴은 비명횡사하는 주변 사람이 늘어날수록 더 안전해진다고 여길지 궁금하다.

정영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