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 '민원 거부권'… 악성민원 학부모엔 학교가 '반성문' 요구

입력
2023.08.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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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교권 회복 종합대책 발표]
휴대폰·SNS·사생활 민원엔 '거부권'
악성민원, 교권침해로 규정해 제재
학생인권조례는 교권반영 개정 유도

교권 침해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학부모 악성 민원을 막기 위해 정부가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교사는 반복적·악의적 민원에 응하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된다. 악성 민원이 교권 침해 행위로 명시돼 학교가 해당 학부모에게 재발 방지 서약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민원 창구는 학교장 직속 민원대응팀으로 일원화하고 단순 민원은 인공지능(AI) 챗봇으로 처리된다. 학생인권조례를 교사·학생·부모의 권리와 책임을 담은 '교육공동체 조례'로 개편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교육부는 23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이후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교사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권 추락은 학생·교사·학부모의 권한과 책임이 균형 있게 정립되지 못한 데 기인한다"며 교원·학부모 소통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춰 대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민원 대응 주체는 '교사' 아닌 '학교'

이번 조치로 교사는 △개인 휴대폰 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제기되는 민원 △사생활 등 교육활동과 무관한 민원에 대해 답변을 거부할 권리를 갖는다. 전화·대면 상담 때 교사의 자기방어 조치도 도입된다. 학부모가 전화 상담에서 폭언을 하면 법적 조치 경고 후 전화를 끊을 수 있고, 대면 상담 자리에 교장이나 교감에게 동석을 요청할 수 있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을 민원 응대 매뉴얼에 반영해 학부모들이 숙지하게 할 방침이다.

교육부 고시상 교권 침해 행위에 '학부모 악성 민원'이 포함된다. 관련 조항에 △목적이 정당하지 않은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행위 △교원의 법적 의무가 아닌 일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학부모의 교권 침해를 학교가 제재할 수 있는 규정도 신설돼 △서면 사과 및 재발 방지 서약 △특별교육 이수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특별교육을 거부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민원대응팀은 교장 직속에 설치, 민원 대응은 교사 개인이 아니라 학교 기관의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대응팀은 학교 대표전화와 온라인 시스템으로 민원을 접수해 직접 처리하거나 담당 교사에게 이관한다. 급식표 공지 같은 단순한 요청은 챗봇을 활용해 답한다. 학교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민원은 교육지원청의 '통합민원팀'으로 넘긴다. 통합민원팀은 변호사를 포함해 5~10명으로 구성된다.

학생인권조례→교육공동체 조례 개편 유도

교육부는 교육계 일각에서 교권 침해의 원인으로 지목된 학생인권조례의 개편 방안도 밝혔다. 학생인권조례를 교사·학생·부모를 망라한 '교육공동체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례'로 정비하도록 권고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조례 예시안을 만들어 시도교육청과 협의하는 방식이다. 현재 학생인권조례는 7개 시도에서 시행하고 있다.

교육부는 다음 달부터 개정 시행되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가 학생인권조례와 상충된다는 점도 조례 개편 이유로 들었다. 예컨대 개정 고시에는 교사가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쓰는 학생에게 2회 이상 주의를 준 뒤 휴대폰을 압수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게 학생의 휴대폰 소지 및 사용을 금지할 수 없게 한 조례 내용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교권 위축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는 아동학대 신고·조사도 체계 전반을 개편할 방침이다. △교사의 적법한 생활지도는 고의와 중대 과실이 없는 한 아동학대 범죄와 구분(일명 '아동학대 면책') △경찰이나 지자체가 교사 상대 아동학대 신고를 조사할 때 사전에 교육청 의견을 듣도록 하는 방안 등이다. 이 부총리는 "일부 학부모들의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교원들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크게 위축됐다"며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육부는 중대한 교권 침해로 징계를 받은 학생은 생활기록부에 해당 사실을 기재하도록 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번 대책에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보육활동을 보호할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영유아보육법을 개정하고, 보육활동 침해 상황에서 교사가 참고할 대응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안도 담겼다.


학교 행정직, 민원대응팀 신설에 반발

이번 교육부 대책 모두가 학교 현장에 곧바로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동학대 면책과 교권 침해 생활기록부 기재는 국회 입법이 필요한 사안이고, 특히 후자는 여야 간 입장 차가 크다. 학생인권조례 개정은 시도교육청과 지방의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민원대응팀 신설안의 경우 올 2학기에 시범운영을 거쳐 내년 확대 시행한다는 게 교육부 계획이지만, 교사 대신 민원 창구를 맡게 된 학교 행정직원들의 반발이 여전하다. 한국노총 교육청노조연맹은 이날 "(민원대응팀에 포함된) 행정실장과 공무직원을 교권 보호 전쟁터의 첨병이 되라고 떠밀고 있다"며 "민원대응팀 추진을 정면 거부한다"고 밝혔다.

홍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