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16일 오후. 서울의 한 법원청사 카페는 더위를 피해 자리를 잡은 민원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테이블엔 차가운 음료가 서너 잔씩 놓여 있고, 트레이 반환대에도 손님들이 놓고 간 잔들이 여럿이다. 하지만 직원들이 설거지로 고생할 일은 없다. 모두 버리면 그만인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컵에 꽂힌 빨대도 모두 플라스틱 재질. 카페 벽에 붙은 '종이 빨대 사용 독려' 포스터가 무색했다.
1인당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 세계 3위(2016년 기준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원 집계). 지구와 미래 세대를 위해 매장 내 일회용품 규제 조치가 시행된 지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국회나 법원 등 공공청사 내 카페에서조차 지침을 따르지 않는 곳이 적지 않았다. 알고도 준수하지 않는 곳도 있었고, 아예 규정을 알지 못하는 곳도 허다했다.
카페∙식당 등 식품접객업장에서 플라스틱 재질의 컵∙용기∙접시 사용이 전면 금지된 것은 지난해 4월부터다. 코로나 팬데믹 탓에 한시 면제됐던 개정 자원재활용법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다. 같은 해 11월부터는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도 1년 계도기간을 전제로 금지 품목에 추가됐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16~21일 서울 소재 5개 지방법원(중앙·동부·남부·북부·서부), 대법원, 경찰청, 서울시청, 국회 등 국가기관 건물 내 카페 10곳을 방문한 결과, 매장 이용 손님에게 다회용 잔을 제공하는 곳은 서울중앙지법과 서울시청 단 두 군데에 불과했다. 국회 의원회관과 소통관은 종이컵을 제공했고, 나머지 6곳에선 가게 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주문을 받으며 손님에게 매장 이용 여부를 묻는 곳도 서울중앙지법과 시청을 포함해 4곳에 그쳤다. 대법원 카페는 무인 주문기(키오스크)에 '매장'과 '포장'을 고르는 선택지가 없었고, 나머지 4개 지방법원도 주문 과정에서 별도 확인은 하지 않았다. 경찰청과 의원회관 카페는 손님의 내부 취식 의향을 먼저 묻긴 했지만, "마시고 간다"는 답에도 일회용 잔을 건넸다.
일회용품 사용 억제를 위해 정부는 '실천지침'을 마련하고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저감 정책 동참 유도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실제론 법령을 제정·집행·해석하는 입법·행정·사법부 청사 내부에선 일회용품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공공청사 내부 카페 10곳의 절반(5곳)이 정확한 규정을 모르고 있었다. "감염병 확산 땐 내부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면 안 됐지만 지금은 가능하다"거나 "사내 카페는 괜찮다"고 잘못 안내하는 곳도 있었다.
반면 지침을 알고는 있지만 현실적 이유를 들어 어려움을 토로하는 곳들도 있었다. 한 카페 관계자는 "매장에 머그잔을 구비하고 원하는 분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면서도 "잠시 앉았다 가는 직원 손님이 많아 일일이 일회용컵으로 교체하기 쉽지 않다"고 난색을 표했다. 다른 카페 점원도 "다회용 잔을 제공하면 회전율이 떨어져(손님이 빨리 나가지 않아서) 아직 계도 대상인 종이컵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무부처인 환경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한정된 인력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월 1회 단속에서 모든 매장을 둘러보기엔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이달 감사원이 '전국 확대 추진'을 통보한 일회용컵 보증제도 당장은 구체적인 시행 계획이 없다고 한다.
시행 1년이 훌쩍 넘은 일회용품 규제가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기존의 홍보∙점검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시민 모니터링제도의 활성화가 하나의 대안으로 꼽힌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과태료 부과 시기와 대상이 제각각이라 사업자들도 헷갈리기 일쑤"라면서 "시민 자원봉사자들의 힘을 빌려 홍보와 신고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