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께서 대표팀 명단 발표도 기자회견보다 온라인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주셔서 그렇게 진행할 예정입니다."
대한축구협회는 오는 28일 예정된 9월 A매치 대표팀 소집 명단 발표를 온라인 화상을 통해 진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국가대표팀 감독의 부재 속에 대표팀 명단이 온라인으로 발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셈이다.
축구협회는 지난 17, 18일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과 국내 매체들 간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클린스만 감독이 오는 31일 모나코에서 열리는 2023~24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 추점식 행사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3월 부임해 67일을 제외하고 100여 일을 해외에서 체류했다.
축구협회가 비판받을 이유는 명백하다. '남의 집 행사'를 위해 부재한 감독을 이해하기도 힘든 판에 "온라인으로 발표하자"는 그의 말에 동조해서다. 지금까지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았던 그 어떤 감독도 대표팀 명단 발표 시 부재한 적이 없었으며, 더군다나 온라인 발표는 전무하다. 대표팀 감독이 공석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를 두고 축구계에서는 "축구협회가 클린스만 감독의 '기행'을 뒷짐지고 구경하고 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직접 접촉, 선임한 감독이기 때문에 협회 내에서도 클린스만 감독에게 쓴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있다"며 협회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협회가 한국 상주 관련 계약 조건 역시 클린스만 감독에 유리하게 끌려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나온다.
논란이 된 화상 인터뷰도 협회가 '이강인 차출' 문제를 중재하지 못해 진행한 '촌극'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황선홍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과 클린스만 감독은 9월 아시안게임과 A매치에 앞서 이강인 합류를 두고 줄다리기를 했다. 황 감독은 내달 4일부터 대표팀을 소집해 훈련한 뒤 16일 중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내달 19일 중국에서 쿠웨이트를 상대로 본선 첫 경기를 치른 뒤 21일 태국, 24일 바레인과 맞붙는다. 황 감독은 이강인이 선수들과 호흡을 맞출 시간이 필요하다며 미리 소집하길 원했다.
이에 클린스만 감독은 이번 화상 인터뷰를 통해 "두 대표팀 일정이 겹치지 않으니 A매치를 치른 뒤 아시안게임에 합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못 박았다. A대표팀은 내달 8일과 13일 영국에서 각각 웨일스, 사우디아라비아와 평가전을 가질 예정이다.
황 감독은 7, 8월 클린스만 감독이 부재 중인 상태에서 이강인 차출 문제를 조율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중재하는 건 협회의 주된 업무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고 논란이 커지자, 일각에선 협회가 클린스만 감독의 입을 통해 직접 발언하도록 책임을 전가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자 또 다시 어설픈 대응을 반복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축구협회는 지난 3월 '기습 사면' 사태로 역풍을 맞아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7월에는 음주운전 이력으로 국가대표가 될 수 없는 선수를 발탁해 "2부리그 선수라 정보가 부족했다"는 황당한 해명으로 조롱을 받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축구대표팀은 역대급 라인업으로 황금기를 맞고 있지만 축구협회의 행정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과연 내년 아시안컵과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