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2배 가까이 늘어난 정부 R&D 예산의 상당 부분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되거나 연구기관 주변에 난립한 브로커들의 잇속을 챙기는 데 흘러들어 갔다는 지적이 21일 제기됐다. 이러한 R&D 예산 비효율과 부처·연구기관·브로커 사이의 '공생 카르텔'을 근절하기 위해선 대통령실에 컨트롤타워 설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과학기술특별위원회는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부처와 연구기관 주변에 컨설팅 업체의 탈을 쓴 브로커 업체가 약 1만 개 존재하고, 정부 R&D 예산을 둘러싼 '부처·기관·브로커 간 공생 카르텔'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특위는 먼저 R&D 예산 투입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2012년 16조 원 규모였던 정부 R&D 예산은 올해 31조 원으로 약 2배 증가했다. 이에 연구관리전문기관은 같은 기간 4배 이상(11개→49개) 증가했지만, 이 중 핵심기능인 기획 분야 인력은 20%에 불과했다. 특위 위원장인 정우성 포항공대 교수는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마련된 예산이 관리 기능만 늘리는 엉뚱한 곳에 쓰였다"고 비판했다.
연구기관 주변에 난립한 브로커 업체 관리를 정부가 방조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위 조사 결과, 8월 기준 기획·과제관리업(컨설팅업)으로 등록된 업체는 총 647개인데, 이 중 77%가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는 10인 이하 영세업체였다. 정부는 업체 인력 규모만 집계할 뿐 전관예우 채용 여부 등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40건의 중소기업 R&D 브로커 신고가 접수됐으나 처벌 사례는 없었다. 정 교수는 "사각지대에 있는 미등록 업체까지 포함하면 컨설팅 업체만 1만여 곳에 달할 수 있다"며 "합법이란 체계 아래 숨겨진 카르텔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기획역량이 부족한 중소업체가 브로커가 대리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정부의 R&D 예산을 따내면, 브로커는 해당 예산 중 일부를 챙기는 방식으로 공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 R&D 예산에 대한 부실한 심의 관행도 지적됐다. 사업 간 차별화나 중복수혜 방지를 위한 대책도 없고, 전문가 심의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0년 소부장 예산의 경우 전문가 심의를 거친 예산은 8,100억 원이었으나 정부안에선 1조7,200억 원으로 대폭 늘었다. 특위는 2019~2022년 정부 R&D 예산 증액분(9조3,000억 원) 중 46%(4조2,780억 원)가 부실 증액 예산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위 부위원장인 김영식 의원은 "우리 부처와 기관 칸막이에 숨어 있는 카르텔·비효율 혁파를 위해 시스템 혁신이 필요하다"며 △대통령실·국회 등에 상설 R&D 컨트롤타워 설치 △국가 R&D 통합시스템 정비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