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 미국서 파산 보호 신청... "중국 부동산 시장 전체의 붕괴 신호"

입력
2023.08.18 18:30
1면
비구이위안 디폴트 위기와 맞물려 불안 확산
국영 회사들도 재정난... 외국 자본도 탈출 중
당국, 국내 투자자들에 "시위 말라" 압박도

중국 부동산업계 위기의 진앙이었던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그룹(에버그란데)이 결국 채무 상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미국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헝다의 파산 가능성이야 이전부터 제기됐던 터라 당장 글로벌 금융 시장에 미칠 여파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지만, 최근 중국 최대 민간 부동산 회사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와도 맞물리면서 불안감은 증폭되는 모습이다.

게다가 국영 부동산 기업들의 재정난 소식도 전해지면서 중국 부동산 시장 붕괴 우려는 자꾸만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심리도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최악의 경우, 이번 사태가 금융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 협상 전까지 미국 내 자산 보호를"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헝다는 이날 미국 뉴욕 법원에 '챕터 15'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챕터 15는 회생을 추진 중인 외국계 기업이 미국 내 채권자의 채무 변제 요구·소송으로부터 기업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헝다 측은 청원서에서 "홍콩과 케이맨 제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진행 중인 채권 구조조정 협상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채권자들이 이달 중으로 구조조정 협상안 승인 여부를 놓고 투표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구조조정 계획이 윤곽을 드러낼 때까지 미국 내 자산 보호를 신청한 셈이다. 미국 법원의 심리는 다음 달 20일 열릴 예정이다. 헝다그룹은 중국 내에서도 정보 공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증권 당국 조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1990년대 중국 부동산 개발 붐을 타고 승승장구하던 헝다는 2020년 본격화한 정부 규제로 자금난에 시달렸다. 2021년 12월 역외 채권 상환에 실패하면서 디폴트에 빠졌고, 중국 부동산 위기의 시발점이 됐다. 올해 3월 195억5,000만 달러(약 27조 원) 규모의 역외 부채 해결 방안을 발표하는 등 부채 해소 노력을 했으나, 이번 파산 보호 신청으로 위기 상황을 또다시 드러내게 됐다. 헝다의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3,300억 달러(약 440조 원)에 달한다.

비구이위안발 위기와 겹쳐... "중 경제, 대외 신뢰도 위기"

어느 정도 예견된 파산 신청이라 해도,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헝다가 지금까지도 채권단과 협상 중이라는 사실은 헝다뿐 아니라 중국 부동산 시장 전체가 천천히 붕괴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짚었다. 특히 지난 7일 비구이위안이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 규모의 채권 이자를 내지 못해 디폴트 위기에 처한 게 컸다. 서방 언론들은 중국 대형 부동산 회사들의 연이은 추락에 대해 "부채를 통해 성장을 거듭한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문제" "중국 경제 전반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 등의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국영 기업으로의 위기 확산 조짐, 외국 자본 이탈 등 부정적 신호도 잇따른다. 블룸버그통신은 18일 "중국 본토와 홍콩에 상장된 중국 국영 건설사 38곳 중 18개가 올해 상반기 잠정 손실 상태"라고 보도했다. 또 상하이와 선전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총 15억 위안(약 2,743억 원)어치 주식을 팔아 치우며 9일 연속 순매도세를 견인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7일 "중국 투자 시장에서 최근 한 달간 540억 위안(약 9조8,685억 원)가량이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18일 홍콩 항셍지수와 상하이종합지수는 각각 장중 1.66%, 0.65%씩 하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반정부 시위 번질라... 정부, 여론 단속 나서

당국은 다급히 여론 단속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는 "중국 공안 당국이 이른바 '그림자 은행'으로 불리는 부동산신탁회사 중룽국제신탁 투자자들을 찾아다니며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룽은 대주주인 중즈그룹이 최근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만기 상품 상환을 못 하고 있는데, 최근 본사 앞에서 돈을 돌려받지 못한 일부 투자자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부동산·금융 시장의 위기가 자칫 반(反)정부 성격의 시위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