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득 상위 10%인 부유층이 미국 전체 탄소 배출량의 40%를 뿜어 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후변화를 초래한 책임과 피해 부담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게 재확인된 셈이다. 재난은 사회적 약자한테 더 가혹한 법이다.
17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재러드 스타 미 애머스트 매사추세츠대 교수 연구팀은 이날 과학저널 ‘플로스 클라이밋(PLOS Climate)’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소득 분위별로 미국인들이 1달러를 벌 때마다, 얼마나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지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각 구간마다 총 배출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했다. 최근 30년(1990~2019년) 동안 미국 정부·기업의 탄소배출량을 임금·투자·사회보장 등 가계 소득과 연동시키는 방법이 활용됐다.
그 결과, 미국인 상위 10%가 미국 전체 탄소 배출량의 40~43%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층이 온실가스 배출에 크게 기여한 셈이다. 소득 수준이 올라갈수록 배출 기여도도 높아졌다. 소득 상위 1%는 약 17%를, 0.1%는 7~8%를 각각 배출했다.
주목할 대목은 각 계층이 탄소를 ‘어디에서’ 배출했느냐는 점이다. 연구진은 "소득 분위가 올라갈수록 탄소 다배출 산업에 대한 투자 수익이 주요 배출원이 됐다"고 밝혔다. 예컨대 소득 5분위는 소득 1달러당 탄소를 0.3~0.7㎏ 배출했는데, 이 중 10%가 사회보장급여에서, 60%는 월급에서 각각 나왔다. 그러나 상위 10%는 배출량(0.3~0.7㎏)의 10%가량이 투자활동에서 비롯됐다. 상위 1%(0.3~0.8㎏)는 40%가 투자활동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CNN은 "미국 고소득층은 거대한 집과 전용기를 사용할 뿐 아니라, 화석연료에 투자했기 때문에 가장 큰 오염원이 됐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그간 '소비'를 기반으로 탄소세를 부과하던 흐름을 소득과 화석연료 투자 수익 기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기·연료·육류 등 과세 대상으로 거론된 소비재는 계층별 사용량이 크게 다르지 않고, 지출 대비 생활재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에게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소 다배출 업종 투자 수익에 과세할 경우, 이 부담은 소득 대비 투자 비율이 높은 고소득층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연구팀은 "(화석연료 투자에 과세하는 방식은) 고소득층과 투자 기관이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저배출 산업으로 투자를 전환하도록 압박하고 국가 탄소 감축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탄소세입을 저소득층이나 저개발 국가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기후 대응에 활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은 고소득층 탄소세를 도입할 경우, 유럽과 미국에서만 매년 1,750억 달러(약 234조 원)를 모금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