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맛'의 씁쓸한 뒷맛 [이혜미의 활자예찬]

입력
2023.08.18 04:30
15면

편집자주

매주 출판 담당 기자의 책상에는 100권이 넘는 신간이 쌓입니다. 표지와 목차, 그리고 본문을 한 장씩 넘기면서 글을 쓴 사람과 책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이를 읽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이혜미 기자가 활자로 연결된 책과 출판의 세계를 격주로 살펴봅니다.

지난 6월 논픽션 '전쟁 같은 맛'(글항아리 발행)이 출간되자 평단과 언론의 찬사가 줄을 이었습니다. 본보를 비롯해 대부분 주요 언론사가 서평을 비중있게 다뤘고, 지난 주말에는 대형 온라인 서점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논픽션은 픽션(허구)이다"라는 주장이 입길에 올랐습니다. 미군 기지촌 출신 여성으로 미국인과 결혼해 타지로 이주한 모친의 생애와 가족사를 회고록 형식으로 쓴 이 책에 대해, 저자 그레이스 M.조의 오빠 부부가 미국의 독서감상 서비스인 '굿리즈(goodreads)'에 남긴 댓글이 확산된 겁니다. 그들은 "책에 나온 거의 모든 내용이 거짓"이라며 "저자가 다른 가족들에게 확인 작업을 거치지 않았으며 가족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주장합니다.

논란이 확산하자 15일 글항아리는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대부분 기록을 통해 저자가 적은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출간 직전 이를 알게 된 담당 편집자가 원 저작권사에 문의했는데 "저자가 관련 사실을 충분히 소명했고, 저자의 출판권을 지지한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자도 부친의 유언장과 공공 및 개인 기록물, 등장인물들의 진술서 등을 제출하며 출판사에 충실히 사실관계를 설명했다고 합니다.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관점과 기억은 제각기 다르기에, 논픽션 혹은 회고록이라는 장르가 배태하는 태생적 쟁점일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미필적 고의와 불순한 의도, 애매모호한 서술 사이 어딘가 존재할 수 있고, 어쩌면 세상을 떠난 책의 주인공, 저자의 모친 '군자'만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실체적 진실이라 믿고 읽은 독자 중 한 명으로서 뒷맛이 썩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리 갈등 관계에 놓여 있었다곤 하나, 저자가 더욱 책임감을 발휘해 엄격한 동의 절차를 거쳤으면 어땠을까 아쉬움도 남습니다. 제기된 쟁점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기대합니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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