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컸던 암사자 사순이는 탈출 약 1시간 만에 우리에서 겨우 20m 떨어진 곳에서 사살됐다. 멸종위기종인 사자가 장기간 '합법의 울타리' 안에서 커 왔음에도, 이 사자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한국까지 흘러 들어왔는지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 애초부터 맹수 관리를 철저하게 했더라면 사순이가 15년간 컸던 집 코앞에서 죽임당하는 일은 없었을 거란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15일 대구지방환경청에 따르면 경북 고령군 개인 농원에서 자란 사순이는 국제멸종위기종 2급인 판테라 레오(Panthera Leo) 종으로 수입·수출이 엄격히 규제된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시행령과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업무처리 지침을 보면, 멸종위기 동물의 경우 △학술 연구용 △일반 공중 관람용 △일시 체류 목적 입국자의 애완용 △환경부 장관이 고시하는 인공증식돼 해외에서 판매되는 동물 중 하나에 해당돼야 반입할 수 있도록 한다. 개인은 예외에 해당하지 않으면 기를 수 없다.
까다로운 규정이지만, 막상 사순이의 반입 경위는 파악되지 않는다. 첫 공식 기록은 2008년 11월 경북 봉화군에서 지금의 농원으로 수사자 한 마리와 함께 옮겨졌다는 양도신고다. 사순이의 수입허가 용도는 '관람용'으로 기재됐다. 수입 일시와 경로 등은 나와 있지 않아 환경청이 추가 기록을 찾고 있다. 야생생물법의 전신인 '야생동식물보호법'은 2005년 제정됐는데, 스무 살로 추정되는 사순이가 그전에 수입돼 법 적용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사순이가 생전 살았던 환경은 한눈에 보기에도 열악했지만, 당국은 합법으로 봤다. 해당 농원은 2015년 사육시설로 등록됐고 지난해 2월엔 군청에서 관광농원으로 지정해 관광객도 받았다. 환경청이 매년 1회씩 사육 환경도 점검했다. 하지만 맨바닥에 비좁고 녹슨 철제 창살만 올린 사육장은 감옥과 다름없었다. 현행법상 맹수 사육장은 방사장과 합해 한 마리당 14㎡ 면적에 2.5m 높이 펜스만 갖추면 된다. 지난해 사순이의 사육 환경을 점검했던 환경청 관계자는 "해당 농원은 전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사자·호랑이 개인 사육장"이었다며 "위법 사항은 없었지만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싶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사순이를 더 나은 환경에서 철저히 관리했더라면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거란 지적도 줄을 잇는다. 앞서 농원 주인이 환경청에 사순이를 동물원에 기부하거나 대여할 것을 요청했지만, 사자 간 서열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환경부가 건립 추진 중인 야생동물보호 시설 두 곳은 중소형 동물 수용을 목적으로 한다"며 "대형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 마련 등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12월부터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번 농원과 같은 시설에선 더 이상 야생동물을 기를 수 없다. 동물원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뀌고, 동물별 사육기준도 구체적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사순이처럼 대형 동물원이 아닌 개인 사육장이나 소규모 사육시설에 갇힌 동물들은 계속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개인이나 소규모 시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관리·감독이 소홀할 수밖에 없다"며 "전수조사를 해서 실제 적절한 관리가 되는지 파악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