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강원 강릉시에서 새끼사자 두 마리가 사육장을 탈출한 사건에 이어, 7개월 만에 경북 고령군에서도 성체사자 한 마리가 우리를 벗어나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했다.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민간 시설에서 사육되는 맹수의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경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24분쯤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 A목장에서 "스무 살 된 암사자 한 마리가 우리를 벗어나 산으로 달아났다"는 신고가 119 등에 접수됐다. 신고 직후 고령군 공무원, 경찰관, 엽사 등 159명이 수색에 나서 20여 분 뒤 목장에서 약 20m 떨어진 숲에 있던 사자를 발견했다. 경찰은 인근에 민가가 있다는 사정을 고려, 오전 8시 34분쯤 이 사자를 사살한 후 고령군에 인계했다.
조사 결과 '사순이'라는 이름의 이 암사자는 관리인이 먹이를 주고 청소할 때 사육장 문이 열린 틈을 이용해 빠져나간 것으로 파악됐다. 관리인은 사자가 탈출한 사실을 곧바로 목장 주인에게 알렸고, 주인이 당국에 신고해 수색과 포획이 이뤄졌다.
멸종위기 2급 동물로 지정된 사자는 야생동물보호관리법에 따라 정식 통관 절차를 거쳐야만 사육할 수 있다. A목장은 당국에 신고 절차를 거친 뒤 사자를 키웠던 것으로 나타나, 불법 사육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또 사살된 사자는 20년 전인 새끼 때부터 사육돼 비교적 온순한 편인 데다 발견 당시에도 목장에서 멀리 도망가지 않고 근처 숲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경찰 등이 사살을 결정한 이유는 목장 인근 대형 캠핑장에 수십 명의 휴가객이 머물고 있었고, 직선으로 800m에 마을회관 등 민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부의 ‘동물 탈출 시 표준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탈출 동물이 원래의 우리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만, 위험 정도나 주변 상황에 따라 마취나 사살을 결정할 수 있다. 이날 고령군과 인접한 대구시, 경북 성주군, 경남 거창·합천군에는 사자 탈출을 알리는 안전문자도 발송됐다.
맹수의 우리 탈출은 최근 들어 빈번해지고 있다. 올해 1월에는 강릉시 한 사설 동물농장에서 생후 6개월인 새끼사자 두 마리가 탈출했다가 2시간 30분 만에 생포됐다. 당시 사자들은 먹이 구멍을 통해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울산 울주군 한 무허가 곰사육농장에서 반달가슴곰 세 마리가 탈출했다가 포획단에 사살된 적도 있다.
민간 사육장에서의 부주의로 맹수가 탈출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관련 규정과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에 사자가 탈출한 A목장의 주인도 소를 키우기 위해 목장을 인수했다가 어쩔 수 없이 사자를 떠안았고, 먹이와 치료비 등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환경청이나 동물원 등에 문의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육을 중도 포기하려 해도 못하다가 결국 잠깐 방심한 틈에 사고가 난 것이다. 이혜원 동물자유연대 소장은 “사살된 암사자도 관리가 잘 됐다면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야생동물들이 억울하게 사살되지 않도록 동물복지 차원에서도 이들을 보호하거나 안전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