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안 팔린 새 옷 '화형식' 언제 끝날까

입력
2023.08.16 04:30
16면
[우리가 몰랐던 쓰레記]
브랜드 관리 이유로 멀쩡한 옷 소각·파쇄
해외는 폐기금지법 제정해 제동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올여름 마지막 세일 놓치지 마세요!'

온라인 쇼핑몰에서 날아온 메시지를 보자 조바심에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아직 여름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마지막 할인이라니까요. 광고를 눌러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역시즌 세일'이라며 지난겨울에 나온 코트와 패딩 점퍼도 파격 할인을 하고 있었거든요.

생각해보면 의류 쇼핑몰에서는 매 계절, 아니 거의 매주마다 새로운 옷을 구입하라는 광고를 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즌에 맞춰 계속 새로운 디자인의 옷을 출시하는 게 이유일 겁니다. 유행이 변하니 새 옷을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새 상품이 늘 '완판'되는 건 아닌가 봅니다. 역시즌 세일이나 재고 떨이 등의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까요. 할인에 할인을 거듭해도 결국은 팔리지 않는 옷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일 겁니다. 새것이지만 주인을 찾지 못한 이런 옷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요.

재고 의류 종착지는 '소각장'

의류 재고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소각장입니다. 단지 팔리지 않았을 뿐 품질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누가 착용한 것도 아닌 새 옷이 그대로 불태워지는 겁니다.

패션업계의 이 같은 '의류 화형식'은 90년대부터 이어진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사람들이 새 옷을 자주 사게 만드는 다품종 대량생산 전략, 즉 '패스트패션'이 도입되면서 관행이 됐다고 합니다. 다국적 컨설팅기업 맥킨지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1,000억 벌 이상의 옷이 만들어지는데, 이 중 약 800억 벌만 소비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옷은 '쓰레기' 같은 취급을 받게 되죠.

물론 패션기업들이 다짜고짜 재고를 버리는 건 아닙니다. 가격을 낮춰서 팔아 보기도 하고 아웃렛 등 유통업체에 염가로 넘기기도 하고요. 때로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수출하기도 합니다.


'브랜드 관리' 이유로 매초 트럭 한 대만큼 폐기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재고는 결국 소각하거나 폐기물 처리업체에 넘겨 버리는 게 현실입니다. 팔리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지만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의 결정입니다. 2018년에는 명품 브랜드인 버버리사에서 판매되지 않은 의류나 액세서리, 향수 등을 불태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철 지난 상품이 유통되는 걸 막아 희소성을 지키겠다는 이유였죠. 2017년 한 해에만 버버리사가 소각한 재고 상품은 당시 돈으로 2,860만 파운드(약 415억 원)나 됐다고 합니다.

재고자산이 많이 남아 있으면 세금이 늘어난다는 점도 소각을 택하는 이유입니다. 경기도의 한 폐기물 처리업체 관계자는 "재고 소각이나 파쇄를 의뢰한 뒤 판매할 수 없는 상태라는 증빙을 받아가는 기업들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재고가 훼손됐으니 회계상 손실로 처리하면 세금이 적게 나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죠.

영국의 순환경제 연구기관 엘렌 맥아더 재단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초마다 쓰레기 트럭 한 대 분량인 2.6톤의 옷이 소각되거나 매립된다고 합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의류산업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체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는데요. 재고 의류 처리방식 역시 여기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재고를 소각하지 않더라도 의류 폐기물은 이미 차고 넘친다는 겁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의류수거함 등에 분류 배출된 옷은 12만 톤에 달합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다소 늘긴 했는데 그전에도 매년 7만~8만 톤이 꾸준히 나왔죠. 그 외 종량제 봉투로 배출된 폐섬유류는 39만6,000톤, 사업장 등에서 버려진 폐섬유류는 6만5,000톤입니다. 여기에는 패션기업의 별도 소각량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공개할 의무도 없거니와 매출과 직결된 민감한 문제라 밝히길 꺼리기 때문입니다.

새 옷 버리는 대신 재활용 유도해야

최근에는 기업들도 보다 친환경적인 재고 처리 방식을 찾고 있습니다. 한섬은 2021년부터 재고 의류 중 일부를 친환경 인테리어 마감재로 업사이클링합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재고 물량 중 절반은 기부하고 절반은 소각 대신 파쇄한 뒤 재활용업체에 보내 타이어 재료로 활용하고 있죠.

하지만 기업의 선의에만 맡기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재고 폐기를 전적으로 금지하는 국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멀쩡한 옷을 쉽게 태우던 관행에 제동을 걸고 필요한 양만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거죠. 프랑스는 2020년 의류 재고를 소각하는 대신 반드시 기부하게 하는 법안을 제정했습니다. 이를 어기는 법인에는 최대 1만5,000유로(약 2,200만 원)의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간접적 방식의 규제도 있습니다. 독일은 의류 재고 폐기 시 그 양을 정부에 보고해야 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외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벨기에는 재고를 기부할 경우 세금을 감면합니다. 지난 5월에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미판매 또는 환불된 의류의 폐기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 초안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고 폐기 금지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시민단체 다시입다연구소와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은 올해 초부터 이 문제를 논의하며 법안을 준비 중입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을 일부 개정하려는 것인데요. 장혜영 의원실 관계자는 "사업자의 책무에 재고 폐기 금지를 추가하고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재고 재활용 노력을 유도하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빠르면 이달 말쯤 발의 예정이라네요.

정주연 다시입다연구소 대표는 "새것이나 다름없는 의류 재고를 버리는 것은 환경문제는 물론 과잉생산에 따른 개발도상국의 노동문제와도 연결된다"며 "기업의 자정 노력을 유도하는 동시에 한 번 산 의류를 고쳐 입고 바꿔 입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