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드리운 트럼프의 그림자

입력
2023.08.13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중서부 아이오와주. 옥수수·돼지고기로 유명한 그곳 가을은 4년마다(정확히는 4의 배수가 되는 해의 전년) 외지인으로 분주해진다. 이듬해 1월 치러지는 아이오와 코커스 때문이다. 대선이 치러지는 해, 미국은 예비경선으로 공화·민주당 1위 후보를 주마다 결정하고 7~8월 전당대회에서 최종 후보를 확정한다. 아이오와 코커스는 미국 50개 주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는 예비경선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아이오와에 쏠리는 관심은 올해도 예외가 없다. 지난 주말 주도 디모인(Des Moines)에서 공화당 1, 2등 후보의 세 대결이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아이오와 박람회’에 참석했는데, 트럼프가 완승했다. 트럼프 행렬에 디샌티스의 텃밭인 플로리다 지역 의원까지 합류했다. 외신에 따르면 공화당 유권자 사이에서 트럼프 지지율(47%)은 디샌티스(13%)를 압도하고 있다.

□ 미국에서는 내년 11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의 재대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트럼프에 대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대선행보를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옥중에서 출마해 표 대결에서 승리한다면 면책특권에 따라 재임 중 사법절차가 중단된다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아이오와에서 보여준 트럼프 특유의 역동적 모습은 바이든 우세를 점치기 어렵게 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국면에서는 온라인 유세만으로 충분했지만, 미국 전역을 돌아야 하는 내년 대선 일정을 고령의 바이든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 트럼프의 재선은 복수혈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내부는 물론, 국제질서에도 상상하는 것 이상의 충격이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가 바뀌고, 지난 4년 회복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도 근본부터 뒤집힐 수 있다. 러시아, 중국이 내년 대선 기간 미국의 혼란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심각한 건 '1기 트럼프 행정부' 때처럼 이번에도 우리는 물론 전 세계가 트럼프의 변덕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선을 도둑 맞았다’는 선동에 미국 유권자들이 얼마나 중심을 잡아 줄지에 지구촌 운명이 달린 형국이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