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외면했던 ‘단신 선수’… 농구판을 뒤집다

입력
2023.08.12 10:00
19면
애플TV플러스 다큐 '전설이 된 언더독'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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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88㎝. 슈팅가드라고 하나 농구선수로서는 단신이다. 하물며 2m 이상 선수가 허다한 미국 농구판에서야. 미 프로농구(NBA)에서 최우수선수(MVP)를 두 차례 차지하고, 가장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스테픈 커리(35)는 왜소한 체격의 한계를 극복하고 코트를 정복한 선수다. NBA에서는 작은 키에도 성공한 선수가 꽤 있으나 커리만큼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경우는 없다.

①대학 진학조차 힘겨웠던 과거

커리는 어려서부터 농구를 좋아했고, 소질을 보였다. NBA 선수였던 아버지 델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커리는 주로 외곽에서 3점슛을 던지는 '슛쟁이'였다. 어린 시절 그의 실력은 사람들의 눈길을 잡기 충분했으나 고교 졸업 무렵 그는 암담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졸업한 버지니아공대 진학을 원했으나 대학 농구팀 코치진은 왜소한 커리를 외면했다. 다른 농구 명문들도 다르지 않았다.

데이비드슨대학의 밥 맥킬롭 감독은 달랐다. 커리가 팀의 위상을 바꿔 놓으리라 예상했다. 커리는 데이비드슨대학 입학을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잘 알지 못할 정도로 데이비드슨대학은 농구 약체였다. 데이비드슨대학이 속한 남부콘퍼런스도 농구팬들이 관심을 잘 두지 않는 지역 대학 리그였다.


②대학농구 태풍의 눈으로

커리는 맥킬롭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데이비드슨대학은 2008년 22연승을 거두며 남부콘퍼런스 우승을 차지했고, 미 대학농구 강자들이 집결하는 NCAA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팀 역사상 39년 만에 16강에 들었고, 8강까지 올랐다. 재학생들을 비롯해 지역사회는 흥분했다. 커리가 주도한 기적이었다. 커리는 NBA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주목할 만큼 ‘전국구 선수’로 부상했다.

다큐멘터리는 2022년 시즌 NBA에서 활약 중인 커리와 데이비드슨대학 재학 시절 커리를 오간다. 소속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세 차례 NBA 우승을 안겨준 커리는 고전 중이다. 팀은 우승과 거리가 먼 상태이고 커리는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모두의 예상을 깬 결과를 빚어낸다. 데이비드슨대학 시절의 그처럼 말이다.

③믿음과 사랑 그리고 신념

다큐멘터리는 커리의 성공 비결을 직설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저평가와 비판에도 훈련에 몰두하고, 뒤늦게 대학 학위 논문을 쓰는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커리가 첫 경기에서 부진했음에도 두 번째 경기에서도 출전시킨 맥킬롭 감독의 리더십, 아들에게 특정한 길을 강요하기보다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유도해 준 커리 부모의 교육 방식이 나오기도 한다. 믿음과 사랑, 꾸준히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이 2008년 데이비드슨대학 돌풍 때의 커리도, 2022년 시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뜻밖 성과도 빚어낸 것이 아닐까.

뷰+포인트
커리의 남다른 재능이나 그의 성취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초야에 묻힌 원석을 찾아내고 잘 닦아내 빛나게 한 약체 대학농구팀 감독의 역할, 자신의 신체조건을 탓하지 않고 성실함으로 최고 자리에 오른 커리의 인간적인 면모 등이 마음을 흔든다. 데이비드슨대학의 놀라운 반란을 커리만의 힘이 아닌, 팀워크에서 비롯됐음을 주목하는 점도 이 다큐멘터리의 힘이다. 섣부른 영웅화도, 어설픈 극화도 하지 않으려 한다. 마지막 대목은 한국 엘리트 스포츠에 꽤 묵직한 메시지를 안긴다. 뒤늦게 학사 학위를 마치고 어느 때보다 더 기쁜 표정을 짓는 커리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이채롭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85%, 시청자 88%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