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전략적 자율성이 상실된 시대, 톨스토이 저서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의 무게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미중 패권경쟁과 전략적 경쟁의 시대에 각국의 전략이 실패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어서다.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신간 '21세기 세계경제'의 저자 김상조는 한국경제의 성과를 좌우하는 세 차원의 요인을 짚는다. 글로벌과 아시아 차원, 한국의 특수한 요인이라는 세 차원이다. 이를테면 글로벌 경제 장기 침체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낮아졌지만 수출증가율은 더 빠르게 하락했다. 동아시아 분업 구조 역시 보완이 아닌 경쟁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한국 내부의 역동성도 오래전부터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저자는 특정한 대외 전략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참여한 정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개혁에 실패한 사람이 이런 책을 쓸 자격이나 있느냐고 묻는다면 비판을 감수하겠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자신 있게 강조하는 것은 "내부의 응집력과 역동성 없이는 어떤 대외 전략도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진영 간 갈등을 줄이는 방법으로 선명한 정책적 제안을 피하는 것을 조언한 점이 흥미롭다. 각 영역의 결정이 미래의 진로를 확정하는 것이 아닌 수정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뜻이다. "정권이 바뀌면 앞선 결정이 모두 번복되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었다. 축적은 없고, 퇴행만 남았다. 오늘 필요한 결정을 내리되, 내일의 수정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