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의 유명 관광지 리장에서 북쪽으로 1시간 30분을 달리면 호도협(虎跳峡)이다. 장강 상류인 금사강이 세차게 흘러간다. 남쪽과 북쪽에 가파르게 솟은 두 산이 너무 가깝게 붙었다. 주봉 해발이 5,596m인 옥룡설산이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북쪽으로는 5,396m 합파설산이 가로지르고 있다. 수직으로 최고 3,900m나 차이 난다 하니 그냥 골짜기라 하기에는 상상을 불허한다. 협곡은 17km나 이어진다. 더 깊고 더 긴 협곡을 쉽게 보기 힘들다.
워낙 길어서 구간을 상중하로 나누는데 상호도(上虎跳)에 가장 붐빈다. 호랑이가 뛰어넘을 정도로 강폭이 좁은 편이다. 폭풍처럼 세차게 흐르는 강 옆으로 내려가니 호랑이가 ‘어흥’ 포효해도 들리지 않을 듯하다. 왜 호랑이일까. 원나라 시대는 설산문관(雪山門關)이라 불렸다. 설산 아래 있으니 그럴듯하다. 명나라에 이르러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이 하나둘 등장했다. 아마도 강 복판에 바위 하나가 건너기 좋게 서 있어서인 듯하다. 호랑이가 디딤돌 삼아 건넜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그 옛날 차마고도의 마방(馬帮)은 협곡을 바라보며 오갔다. 옥룡설산은 완전 절벽이다. 합파설산의 완만한 능선으로 다니고 다녔더니 어느새 길이 생겼다. 교역의 길은 천년의 세월이 만든 보물이었다. 지금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트레킹 코스가 됐다. 체험 삼아 걸어가도 된다. 차를 타고 산길을 30분가량 수직으로 올라 나시객잔(納西雅閣)에 도착한다. 호도협 트레킹 코스의 가장 왼쪽(서쪽)에 위치한다. 지붕 양쪽으로 뻗은 널판지인 박풍과 물고기 모양 장식인 현어가 붉게 칠해져 있다. 지붕 넘어 설산이 아른거린다. 담장에 그려진 노선도만 봐도 흥분된다.
나시객잔에서 산정에 이르는 길은 난이도가 높다. 노선도에 꼬불꼬불하게 표시돼 있다. 갈 때마다 마부 대장에게 미리 연락을 한다. 인원에 맞춰 말을 데리고 온다. 마부가 고삐를 쥐고 길을 인도해 안전한 편이다. 말을 타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니 약간 무섭다. 조금 시간이 지나 말과 한 몸이 되면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설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능선에 자리 잡은 마을도 시야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평탄하지만 30분 정도 지나면 갑자기 가파른 경사가 나타난다. 일명 ‘28밴드’라 부른다. 스물여덟 번이나 방향을 바꾸고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가는 길이다. 젊은이들이 가끔 걸어서 오르는데 누가 부러운지 모를 일이다.
말도 힘이 들어 연신 코로 숨을 내뱉는다. 킁킁거리며 침을 바가지로 흘리니 안쓰럽다. 대여섯 걸음마다 멈춘다. 말에게 미안한 기분이 드는데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거의 1시간동안 말에 의존해 산정에 도착한다. 가뿐 숨으로 올라온 말이 다시 내려갈 준비를 한다. 얼굴 한번 사랑스럽게 매만져주며 감사한 마음을 전할 뿐이다.
몇 걸음 오르니 갑자기 절경이 펼쳐진다. 숨이 먼저 탁 막힌 후 감동의 환호성을 내지른다. 산정은 고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고개에 마련된 넙적 바위에 앉아 옥룡설산이 연출하는 장엄한 풍광을 한없이 바라본다. 구름은 설산의 옆구리를 스치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호도협의 물살만큼이나 빠른 바람이 분다. 절벽 아래로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은 금물이다. 협곡이 얼마나 깊은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산정에서는 우아한 설산만 보게 된다. 설산 정상만 바라봐도 까마득하다.
등산로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대체로 평탄하다. 잘 정돈돼 있어 걷기에 어렵지 않다. 오른쪽으로 자꾸 시선을 두게 되는데 가파른 절벽의 경사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강물까지 시선을 날리면 되돌리기 쉽지 않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계절에 따라 물 색깔이 달라진다. 우기에는 흙탕물인데 건기에 방문하면 맑은 협곡을 실컷 볼 수 있다. 설산 절벽은 갈수록, 볼수록 살벌하다. 마방이 다니던 호도협 구간은 이제 여행자의 로망이 됐다. 고요한 등산로를 따라 무념무상으로 걷는다. 1시간 30분이 지나니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룻밤 묵을 차마객잔(茶馬客棧)에 도착한다. 나시족 주인아주머니는 늘 ‘거거(哥哥)’라며 반갑게 맞아준다. 처음 찾았을 때 후배가 ‘형’이 간다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나랑 동갑이라 그러는지도 모른다. 객잔이 날로 발전해 숙소가 구관과 신관으로 나눠져 있다. 나무 바닥이 ‘과거’의 소리를 내는 구관이 좋다. 시설은 신관이 더 좋다. 계단을 올라 2층 난간에 기대 설산을 무대로 흘러가는 구름의 향연을 정처 없이 바라보는 시간이 언제나 그리웠다. 책 한 권을 펼치지만 몇 장 넘기기 못한다. 자꾸 설산이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식당 건물 2층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간다. 옥룡설산 봉우리가 한꺼번에 훤히 보인다. 맥주 한 잔 마시고 여유롭게 바라보는 맛이 황홀하다. 시간은 정지하고 몽환의 세상으로 점입가경이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지겹지 않다. 정상을 허락한 적 없는 처녀봉이다. 깎아지른 절벽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시족은 어우루(歐魯)라 부른다. 천산(天山)이란 뜻이다. 봉우리가 이어진 모양이 마치 용이 날아오르며 춤을 추는 형상이라 느꼈던가? 석회암과 현무암으로 뒤섞인 설산에 신령을 부여했다.
저녁이 되니 별미가 기다린다. 야생에서 기른 오골계로 만든 백숙이다. 약간 거무스레한 껍질까지 부드럽고 쫄깃해 손이 먼저 간다. 술안주로 제격이다. 오골계와 설산 바람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니 필시 과음이다. 세 사람에 한 마리 기준으로 주문했는데 충분히 배부르다. 주인아주머니는 국물을 남겨 다음날 닭죽을 만들어준다. 술꾼 남편 덕에 익힌 솜씨일까. 별미가 하나 더 있다. 야크가 생산한 치즈로 만든 피자다. 주방에서 뚝딱 만들어내는데 냄새부터 꿀맛이다. 안주로도 잘 맞아서 공연히 술값만 늘어난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이 지켜주는 설산 아래다. 침대에 눕자마자 은하수가 출렁거리는 꿈나라로 간다.
아침이 오는 소리는 따로 없다. 눈을 뜨면 옥룡설산이 여전할 뿐이다. 해돋이도 가끔 본다.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자주 색깔을 바꾸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짐을 꾸려 다시 트레킹을 시작한다. 등산로를 따라 계속 걷는다. 대체로 완만한 길이 이어지고 상쾌한 아침 기운이 위아래에서 불어온다. 차마객잔에서 다음 행선지인 중도객잔(中途客棧)까지는 약 2시간이 걸린다. 가끔 절벽과 가까이 길이 이어지지만 대부분 안전하다. 말을 끌고 가는 마방에게는 고행이었겠지만 여행자의 발걸음은 마냥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듯하다.
길을 가로막고 산양이 나타난다. 아침 나들이를 나와 먹이를 찾아간다. 느닷없는 출현에 놀랐지만 산양은 조용히 비껴간다. 슬쩍 등을 만지니 앵앵 소리 한두 번 내는 정도다. 화가 나면 무서울지 몰라도 온순하게 지나간다. 능선 쪽에 마실 나온 말 두 마리가 보인다. 마부를 따라 언덕을 오르고 있다. 차마고도의 주역이던 말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사라진 마방과 함께 역사 속에서나 기억이 될 뿐이다. 그 길에서 만나니 유난히 반갑다.
중도객잔에 도착한다. 숙박이 가능하고 설산도 볼 수 있다. 중도객잔 점심도 역시나 맛있다. 호도협 구간의 음식은 어디나 담백하고 소박하다. 기가 막히게 입맛에 맞아 언제나 만점이다. 시장이 반찬인 까닭이다. 1인 30위안에 맞춰달라 하니 알아서 요리가 나온다. 감자나 채소 위주인데 접시의 바닥을 보고야 말았다. 전망대에 올라 지나온 길을 뒤돌아본다. 선명하게 차량이 오르내리는 산길 도로가 보인다. 등산로는 도로 위쪽이다. 산에 가렸지만 멀리 협곡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두 설산이 교차하고 있는 형상이다.
다시 길을 떠난다. 외국인이 배낭을 메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을 한다. 거꾸로 주행하는 여행객도 있다. 서로 미소로 트레킹의 만족감을 공유한다. 1시간가량 걸으니 관음폭포가 나타난다. 갑자기 시원한 물줄기가 길을 가로막는다. 미끄러워 조심스레 건넌다. 땀 흘리며 왔는데 다시 물기가 얼굴을 적신다. 땀인지 물인지 모르지만 기분이 상쾌하다. 폭포를 지나니 하산하는 길이 이어진다. 차 지나는 소리 들리고 협곡이 출렁인다.
트레킹 코스는 계속 이어진다. 설산이 길게 견주고 있으니 길은 끝나지 않을 듯하다. 미동도 하지 않는 설산 사이로 구름이 휘날리고 있다. 마치 두 산을 잇기라도 하는 듯하다. 마방은 장장 수천 리 차마고도를 걷고 또 걸었다. 눈이 오건 비가 오건 묵묵하게 지나가는 행렬이 떠오른다. 자연 풍광을 바라보며 걷는 여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호도협을 지난 마방은 샹그릴라로 향한다. 옛길을 다 따라가긴 어렵다. 차량의 도움을 받아 이동한다.
샹그릴라(香格里拉)로 가려면 산을 넘어가야 한다. 214번 국도를 달린다. 초입으로 들어서니 하얀 야크가 산을 오르는 모형이 보인다. 코로나19가 대유행이던 2021년 1월 산을 뚫고 지나는 도로가 개통됐다는 소식이다. 시간이 많이 단축된 듯하다. 휘돌아 고개를 넘어가는 옛길의 정취는 어쩌란 말인가? 다시 가더라도 옛길을 따라가고 싶다. 넉넉하게 잡으면 3시간 걸린다.
샹그릴라는 티베트 말로 ‘마음에 담은 해와 달’이란 뜻이다. 중국어권 가수인 왕리훙이 2004년 ‘신중더르위에(心中的日月)’를 발표했다. 티베트 일대 민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다. 달콤한 음색을 들으니 ‘이상향’ 샹그릴라로 가는 길이 더욱 풍성하다. 소풍 떠나는 아이처럼 설레게 하는 읊조림 같다. 여름에 가면 푸르고 겨울에 가면 하얗다. 하늘은 늘 파란데 계절마다 색감이 다른 오묘한 길이다. 강줄기 따라 달리다가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이다.
숨 가쁘게 달리다 고개를 넘어 살며시 정차한다. 합파설산을 조망하는 전망대다. 정상 부근에 살짝 눈이 덮여 있다. 겨울이면 설산의 위용이 보다 강렬하다. 여름에는 설산의 윤곽만 상상할 뿐이다. 한여름이라 연두색과 초록색이 엇갈리는 밭이 싱그럽다. 이제는 국도로 변한 차마고도를 상상하며 라싸까지 행군을 시작한다. 온통 티베트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있다. 합파설산을 넘어온 마방은 다시 기나긴 행로를 이어갔다. 그들의 피와 땀이 어린 차마고도에는 어떤 색깔의 바람이 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