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에겐 공적 공간이 두려움의 공간이 되고 있다.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믿었던 그저 평범했던 일상의 공간이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장소로 변한 것이다. 7월부터 발생한 다음 네 가지 상황은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생각을 뒤흔들고 있다.
위의 네 사건은 같기도 하고 너무 다르기도 하다. 흉기를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공포를 조장했다는 결과는 같다. 그러나 범죄 동기, 목적, 유형, 그리고 그 예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 사건은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왜 나만 불행해야 합니까?"라는 범죄자의 말에 답이 있다. 그는 현재가 행복하지 않고, 내일이 없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오늘이 너무나 행복하기만 하여 사회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있고,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가치들이 있기에 사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불만과 불행을 감내한다. 그러나 그는 내일이 없었고, 잃을 것이 없었다. 본인의 불만 표출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무차별 공격이 가능하였다. 무차별 공격의 대상은 20·30대 남성. 이는 그가 20·30대의 남성에게 갖고 있는 적개심과 피해의식을 보여준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가 실패하면 낙오자가 되는 사회, 동질성을 갖지 못하면 패배자가 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더욱 많이 양산된다.
두 번째 사건은 정신질환자의 무차별 공격이다. "특정 집단이 나를 스토킹하며 괴롭히고 죽이려 한다" "나의 사생활도 전부 보고 있다"는 그의 말을 통해서 그의 범죄는 정신질환에 기인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실제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약을 복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3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서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을 해하려는 스토커를 살해하기 위해 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결국 신상이 공개되었고, 처벌 수위 역시도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응징과 처벌이 그의 재범을 막을 수 있을까? 그에게는 처음부터 복약지도가 예방이었고, 꾸준한 치료와 보호가 재범억제 방안이다.
연이어 발생한 대전의 고등학교에서의 선생님 흉기 피습사건은 칼부림이라는 행위는 앞선 사건과 유사하지만 목표로 한 대상이 명확하였다는 점에서 이는 앞선 두 사건과 다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성에 원인이 있으며, 칼부림은 표출된 방식일 뿐이다. 오히려 아무나 학교에 쉽게 들어가는 학교 안전망이 문제이다. 그리고 이후 올라오는 다수의 살인 예고 글들은 우리 사회의 단순히 철없는 누군가의 장난이라고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타인의 공포가 즐겁고, 타인에 대한 위협이 장난인 사람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시민의식은 없고 자의식만 있는 이들도 진짜 위험이다.
계속된 사건은 우리에게서 안심과 믿음의 개념을 빼앗아 갔고 경계와 두려움을 심어놓았다. 개인은 호신용품을 구매하게 되었고 사회적 불안감을 틈타 도시에는 장갑차가 등장하였다. 과연 겁주기용 장갑차로 해결된 사안이었던가? 흉기 난동을 겪으며 우리는 방치된 정신질환자, 사회 속에 패배자로 고립되는 외로운 늑대, 자신의 재미를 위해 타인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개념 없고 위험한 자들을 보았다. 그리고 범죄 두려움을 다루는 경찰학의 기본도 무시한 채 장갑차를 들이대며 또 다른 공포를 조장하는 막무가내식의 경찰을 경험하고 있다.
현상은 같지만 원인과 대책은 다르다. 개인은 호신용품을 사고 있고, 경찰은 장갑차를 배치하고 있지만, 이로써는 내일의 또 다른 칼부림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다양한 가치를 포용하는 사회, 정신질환자에 대한 조기 발견과 치료의 제도화, 다중 이용객이 모이는 장소에서의 무기 스크리닝의 당연화, 그리고 남의 고통이 즐거웠던 나의 장난은 범죄임을 가르치는 사회로 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