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서현역 흉기난동’ 피의자 최원종(22)은 혼자 살다 최근 피해망상 증세가 악화돼 부모 집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한 명을 숨지게 하고 13명을 다치게 한 흉악범죄의 주인공이 됐다. 곧장 “환자가 거리를 쏘다니도록 뭘 했느냐”며 가족에게 힐난이 쏟아졌다. 가족들도 할 말은 있다. 정신질환자의 보호ㆍ관리를 가족에게 온전히 떠맡기는 건 부당하다는 항변이다. 중심엔 ‘보호입원제’가 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등 3개 단체는 9일 잇단 정신질환자 흉기 난동사건과 관련해 보호입원제 폐지 및 중증 정신질환의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보호입원제는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전문의 2명의 진단으로 환자를 비(非)자의 입원(강제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다. 이들 단체는 “최소한 중증 정신질환자만큼은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국가가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보호입원제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특히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받는 과정이 너무 복잡해 진료나 치료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2022년 대전에 사는 40대 박모씨는 조현병 증세가 심한 자녀를 강제 입원시키려 했지만, 병원 측은 거부했다. 보호의무자 2인 동의가 입원 조건이라 배우자와 같이 가족관계서류를 지참하고 병원을 방문해 동의서를 작성해야 했다. 이혼한 박씨가 아무리 사정을 설명해도 병원 측은 요지부동이었다.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의 없이도 강제 입원시킬 방법은 있다. 현행법상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전문의에게 의뢰하면 환자 입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민원 및 소송 우려로 성사 비율은 높지 않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2019년 발생한 강제 입원 중 경찰과 지자체에 의한 입원율은 16% 정도에 그쳤다. 환자 5명 중 4명은 가족 스스로 모든 입원 절차를 도맡아야 하는 셈이다.
보호의무자 자격을 갖추는 일도 만만찮다. 부모 외에 환자 형제자매 등 친족도 보호의무자가 될 수 있지만, 3개월 이상 환자와 동거하거나 경제적 지원을 했다는 증빙을 해야 한다. 정신질환자 오빠의 보호의무자인 A씨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뒤 언니가 오빠와 함께 살며 보살핀 끝에 보호의무자가 됐다”며 “폭력성이 강한 환자는 가족과 연을 끊은 경우도 많아 입원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환자들을 수용할 병상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 종합병원급 이상 병원 56곳 중 정신과 입원실을 유지 중인 병원은 25%에 불과하다. 각 병원의 병상 가동률이 상급종합병원은 99%, 종합병원은 95%라 정신질환자가 당일 응급입원을 하는 건 사실상 운에 맡겨야 한다.
여러 상황을 종합하면, 한국도 이제 국가가 정신질환자를 선제적으로 관리할 시점이 됐다는 의견이 많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자ㆍ타해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 발견 시 경찰과 소방에 의료기관 이송 책임을 부여한 미국과 유럽 사례를 들어 국가책임제의 조속한 도입을 주장했다. 최근 거론되는 판사가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사법입원제’도 그중 하나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보호입원제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환자들이 방치되면 개입이 더 어려워지고 사고 유발 가능성도 커진다”며 “정신질환자의 조기 발견 및 치료를 속히 제도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