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따로 없습니다.”
“을지훈련이나 민방위훈련 저리 가라네요.”
8일 오전 중앙 부처와 각 지자체 공무원들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전날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의 조기 퇴영이 갑자기 결정됐기 때문이다. 야영장을 떠나는 각국 대원들의 이송부터 이들이 머물 숙소 확보, 대체 프로그램 마련까지 모두 떠맡게 된 공무원들은 ‘진땀’을 흘려가며 밤새 일을 처리해야 했다.
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전날인 7일 오후 4시쯤 잼버리 스카우트 비상 대피 계획을 발표하기 전부터 지자체는 물론 중앙기관 지방 본부에도 인력 지원 차출령이 떨어져 공무원들은 이미 ‘비상’이 걸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하루 만에 3만7,000여 명이 묵을 숙소를 구하는 일은 ‘미션 임파서블(임무 불가능)’한 과제에 가까웠다. 대책 마련을 총괄한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어제 각 지자체에 수용 규모를 대략이라도 받아야 했는데, 밤이라 담당자들과 연락이 잘 안 돼 한숨도 못 잤다”고 고개를 저었다.
충북(2,710명)에 배정된 인원 중 최다 대원을 수용한 단양군(1,577명)의 경우 전날 밤 9시 숙소 점검 통보가 내려와 자치행정과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대규모 숙박이 가능한 구인사(천태종 본산)로 현장 점검을 나가 편의시설과 침구류를 다 살피고 보고를 마친 시간이 이날 새벽 2시 30분이었다.
대원들이 머무를 12일까지 엄청난 양의 식사를 제공하는 일도 난관이었다. 관내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에서 411명(체코 400명, 베네수엘라 11명)을 수용하기로 한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육사가 방학이라 기숙사 식당도 문을 닫았다고 해서 급히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며 “하루 600~800명가량 이용하는 구청 구내 식당에 식재료를 더 늘려 (대원들 출국 전까지) 매일 점심을 제공하고, 저녁은 관내 예약 가능한 식당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정부의 ‘SOS’에 부랴부랴 숙박시설을 알아봤는데 대원들이 오지 않아 ‘헛수고’한 경우도 있었다. 전성수 서초구청장은 “관내 호텔 등을 물색해 500명 정도 수용 가능하다고 시에 전달했으나 우리 구는 최종적으로 빠졌다”며 “대학 기숙사처럼 대규모 수용 시설을 선호하다 보니 제외된 것 같다”고 했다.
모든 짐을 지자체가 떠맡는 것에 대한 불만도 적잖았다. 갑작스런 숙소 점검 지시에 “이 야밤에 어떻게 숙박 상황을 파악하느냐”는 푸념이 속출했다. 한 공무원은 “방학 기간이라 대학 기숙사들이 연락이 안 돼 새벽까지 발을 동동 굴렀다"고 토로했다.
비용과 관련한 명확한 지침이 없는 것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행안부는 전날 브리핑에서 “비용은 정부가 전적으로 부담한다는 책임을 갖고 진행한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날까지도 지자체 등에 구체적인 기준 등을 설명하지 않았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침이 없어) 기숙사나 연수원 등을 개방한 대학ㆍ기업에도 명확한 조건을 말하지 못해 민망했다”고 털어놨다. 이날 새만금 야영장에서 진행된 마지막 브리핑에서 비용 관련 질의가 이어지자 공동조직위원장인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기부 의사로 하는 곳도 있고, 상황이 다 다르다”며 “발생하는 제반 비용은 지자체하고 협의해서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다 책임진다더니 말이 바뀌는 것 아니냐. 나중에 이 문제를 놓고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국공노)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 등 공무원 노조도 이날 잼버리 파행 사태 수습에 공무원의 강제 동원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