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장소를 새만금에서 수도권으로 옮기며 태풍 북상에 따른 선제 대응에 나섰다. 야영지를 떠난 만큼 도전과 개척이라는 스카우트 정신과 거리가 있긴 하지만, 이번 대회 시작 이후 늑장대응으로 줄곧 망신을 당하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진 모습이다.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이 인재나 마찬가지인 잼버리 부실 준비 논란을 어느 정도 만회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의 결정은 전격적이었다. 한덕수 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7일 오전 태풍 대비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휴가지인 경남 거제 저도에서 태풍의 진로에 대해 보고받으며 "잼버리 장소를 바꿔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번 대회는 12일까지인데 태풍은 이르면 9일부터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세계스카우트연맹은 잼버리 참가자 전원의 조기 철수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하루 먼저 움직였던 셈이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서면 브리핑에서 “태풍 카눈이 진로를 바꿔 이번 주 한반도에 상륙할 것으로 예보됨에 따라 대통령은 스카우트 대원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 어제부터 관계장관들과 플랜B 논의에 착수했다”며 “스카우트 대원들의 숙소와 남은 일정이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이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지시 이후 서울로 올라와 관련 상황을 챙기고 있다. 이날도 한 총리에게 '잼버리 비상대책반' 가동을 지시하면서 "비상대책반을 중심으로 스카우트 대원들의 수도권 수송, 숙식, 문화체험프로그램 등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각별히 당부했다. 비상대책반은 한 총리(반장), 이상민 장관(간사)과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및 주요 부처장, 지자체장 등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준비 부족 논란과 책임론은 차후에 점검해야 할 문제이고, 우선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며 대회를 끝까지 마무리하자는 취지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대회 막판 안전 이미지를 부각시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것이다.
이번 철수 결정으로 일단 최악의 사태는 피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회 닷새째인 지난 5일 정부가 폭염을 비롯한 온갖 비판을 감수하며 대회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지만, 태풍이 닥칠 경우 2차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잼버리 대회 장소는 배수 능력이 떨어져 강수량이 100㎜를 넘을 경우 야영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다만 원활한 대회 마무리를 위해선 잼버리 참가자 3만7,000여 명을 수용할 숙소와 잼버리 대체 프로그램 등이 관건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숙소로 쓸 수 있을 만한 호텔, 대학교 기숙사, 기업 연수시설의 현황을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 총리는 나흘 연속 현장을 지키며 "화장실 청소하러 왔다”고 말할 정도로 대회장 곳곳을 살폈다. 덕분에 대회 초기 혼란을 일정 부분 수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비상계획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회를 치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한 총리는 이날 ‘새만금 철수 시 지원이 가능하느냐’는 세계스카우트연맹 요청에 "총력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각 부처에 태풍 관련 긴급지시를 하면서 이상민 장관에게는 "잼버리 조직위 등과 협의하여 잼버리 참가자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