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깡’ 하는 알루미늄 방망이의 경쾌한 파열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무더위를 피해 실내에서 방망이를 휘두르고, 공을 던지고 있었지만 야구 열정은 폭염만큼 뜨거웠다. 불타는 그라운드가 따로 없다.
7월 30일 찾은 경기 고양실내야구연습장은 고양 실버야구단이 한창 연습 중이었다. 휴가철이라 참여 인원은 평소보다 적었으나 캐치볼, 타격, 수비 훈련을 단계별로 빠짐없이 소화했다. 야구는 부상 위험이 크고, 진입 장벽도 높아 시니어들이 하기 힘든 종목으로 인식됐었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 남성들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야구 실력을 자랑했다.
실버야구단은 승부도 중요하지만 건강과 즐거움에 초점을 맞춰 운영한다. 50세 이상부터 가입할 수 있고, 선출(선수 출신)은 55세 이상부터 받는다. 학창 시절 선수로 활약했던 멤버들도 있고, 야구가 좋아 개인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키운 이들도 많다. 현재 등록 멤버만 50명가량이며, 평균 연령은 56~57세 정도다.
사령탑을 맡고 있는 배우 이근희(63) 감독은 “사회인 야구단에서 뛰다가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눈치가 보이니까 실버야구단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있다”며 “실버야구에서는 50대 초반이면 ‘아이돌’ 대우를 받는다”고 말했다.
실버야구의 가장 큰 특징은 콜드게임이 없다는 점이다. 점수 차에 상관없이 2시간 제한 규정만 있다. 사회인 야구는 4회 10점, 5회 8점 차 이상이면 콜드게임이 선언된다. 이 감독은 “사회인 야구팀 감독을 맡았을 때는 경기에서 지면 승부욕 때문에 훈련을 엄청 시켰는데, 지금은 모두가 다 머리가 희끗하다. 즐겁고 건강하게 야구를 하는 게 우선”이라며 “이제는 한 번 다치면 잘 낫지도 않는다. 승패보다 야구를 안 다치고 즐겁게 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자체 규정도 있다. 손주나 가족과 함께 야구장에 오면 무조건 선발 출전한다. 또 햄스트링 부상 방지를 위해 3루타성 안타를 쳐도 2루에서 멈추게 하고, 무리한 슬라이딩도 금지시키고 있다.
팀원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다. 영화감독 출신 김진영(56)씨는 “사회인 야구를 10년 전에 시작했고, 지금 팀에 온 지는 2년 됐다”며 “팀 이름은 ‘실버’가 들어가 있지만 여기에 오니 다시 젊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야구는 체력 소모가 적어 장년층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투수와 포수를 제외하고는 수비 시 자신을 향해 타구가 날아오는 경우가 많지 않고, 타석도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공수 교대, 투수 교체 땐 잠시 쉴 수도 있다. 그렇다고 건강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 평일에도 몸 관리를 위해 근력 운동을 하고, 달리기나 스트레칭도 틈틈이 한다. 이 감독은 “캐치볼을 살살 하다 보니까 오십견이 다 낫더라”며 미소 지었다.
아직 시속 100㎞의 공을 뿌린다는 장경열(57)씨는 “평소에 하체 근력을 유지하는 훈련과 스트레칭, 전신 운동을 꾸준히 한다”며 “사업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데 주말에 야구를 하다 보면 그게 싹 다 풀린다”고 강조했다.
강릉고 야구부 출신 박성운(54)씨는 “처음 실버야구단에 왔을 때 운동을 안 해서 그런지 적응을 못했다. 동계훈련을 같이 치르다 보니 감이 왔다. 경기에 집중하고 소리를 지르다 보니까 잡념이 없어진다.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