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사회보험이 필요하다

입력
2023.08.07 22:00
27면

저녁 5~8시에 배달 10건을 완료하면 보너스를 준다는 배달앱 공지를 보고, 물 챙기는 것도 잊은 채 오토바이에 올랐다. 두 시간 정도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목이 탔다. 중간에 흐름이 끊기면 10건을 채울 수 없을 것 같아 물을 찾는 대신 핸드폰에 들어오는 배달 주문 콜에만 집중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나서야 편의점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정신없이 스포츠 음료를 들이켰다. 차가운 음료가 뜨거워진 몸을 식히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헬멧 속 열기를 걷어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론에서는 연일 폭염으로 쓰러지거나 사망한 노동자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특히 농사를 짓는 70대 이상 고령 노동자들의 피해가 심각하다. 농민들은 오랜만에 농촌을 찾은 기자들에게 ‘먹고사는 문제를 누가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니 폭염에도 일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수확철과 약 뿌릴 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쳐 살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농부들이 흙과 비닐하우스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도시의 배달노동자들은 아스팔트와 열섬에서 농사를 짓는다. 폭염과 폭우가 쏟아지는 한여름, 혹한과 폭설이 내리는 한겨울을 놓치지 않아야 봄ㆍ가을을 버틸 수 있다.

배달노동자의 지주라고 할 수 있는 플랫폼 기업들도 걱정스러운 경고 문자를 보내기는 한다. ‘금일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렸습니다. 수분 섭취 및 장시간 햇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에 유의하면서 배달 부탁드립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도 보낸다. ‘11~13시까지 7건을 배달하면 보너스.’, ‘지금 배달비 상승을 놓치지 마세요’. 선선한 바람이 불 때쯤이면 기상프로모션 종료 알림이 오거나 가격이 최하로 떨어져 버린다. 수확기를 놓치면 농작물이 다 떨어져 판매할 수 없는 것처럼 배달노동자도 위험한 날씨에 일하지 않으면 수익을 올릴 수 없다. 이러다 보니 해열제를 먹으면서 일하는 동료까지 나타났다.

사망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노동자와 쪽방촌의 현실을 보도하거나, 야외활동 자제권고 문자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인도에서는 폭염이 3일 이상 계속되어 일을 하지 못하면 일당을 보상해 주는 ‘폭염 보험’까지 나왔다.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보험금을 주는 ‘파라메트릭’형 민간 보험이다. 그러나 기후 재앙은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고, 취약한 국민에게 피해가 집중되므로 상호 호혜와 연대 정신에 입각한 사회보험으로 대비해야 한다. 라이더유니온은 이를 기후 실업급여로 명명하고 기자회견을 개최해 정부에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기자회견 바로 다음 날인 4일 고용노동부는 ‘온열질환 예방조치 점검을 위한 리더 회의’를 개최했다. 노동자는 쏙 빼고 기업들만 초대해, 기업이 노동자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를 1시간 동안 들은 후 끝냈다. 폭염에 대한 관심과 논의도 온도가 떨어지면 차갑게 끝날 것이다. 칼바람이 불 때쯤이면 혹한 속 노동자의 근무 환경을 묻는 전화가 걸려 올 것이고 정부는 대책을 마련한답시고 요란한 이름의 회의를 개최할 것이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혹서ㆍ혹한의 계절은 반복해서 돌아온다.

사실 새만금의 잼버리 사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염 속 생존 게임의 모습과 닮았다. 잼버리는 12일에 끝나지만 기후 재앙을 버텨야 하는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기후사회보험에 대한 논의를 한시라도 빨리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조직국장